‘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수천의 아카이아인들에게 수많은 고통을 가져다준 분노를! 수많은 영웅들의 강건한 혼백들을 하데스로 보냈고, 그들을 개들과 새들의 먹이로 던져버렸다네. 이렇게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다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분노의 노래로 시작한다. 트로이전쟁이 배경이지만, 전쟁보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작품을 끌고 간다. 처음 아킬레우스는 영주 아가멤논이 애인 브뤼세이스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하자 격노한다. 명예와 자존심에 대한 분노다. 대응은 전투 보이콧이었다. 분노의 소극적 표현이다. 두번째 분노는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자 폭발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찌르고 시신을 마차에 매단 채 질주한다. 분노의 정점이자,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그렇다고 분노의 해소가 <일리아스>의 주제는 아니다. 정당한 분노는 정의로 연결되고, 정의는 개인의 권리로 이어진다는 깨우침이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3회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일리아스>뿐 아니다. ‘분노’는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주제가 됐다. 자연히 분노는 인간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분노하는 인간(homo iracundus)’의 탄생이다. 분노는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감정이다. 게으름과 무지에 분노한다. 갑질에 분노하고, 혐오에 분노한다. 5·18 망언에 분노하고, 빈부 격차에 분노한다. 분노는 피할 수 없다. 조절하지 못하면 광기가 된다. 반면 잘 조절하거나 조화시키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 ‘분노의 힘’이다. 호메로스는 그 방법을 알았다.

방탄소년단을 이끌고 있는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분노’를 이야기했다. 지난 26일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나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만과 분노였다”고 말했다. 또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타협에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변화를 이끌었다”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몰상식에 맞서 싸워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은 ‘분노의 힘’에서 나왔다. 미학을 전공한 방시혁 대표는 호메로스처럼 ‘분노의 조절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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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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