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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비행기 ‘운전’

경향 신문 2016. 3. 15. 21:00

뜻밖에도 운전을 하지 못하는 조종사가 적지 않다. 알고 지내는 조종사는 면허는 있는데 운전대만 잡으면 무섭고 힘들다고 했다. 거대한 비행기를 시속 1000㎞로 모는 베테랑 조종사가 차 속도가 60㎞만 넘어도 사색이 되곤 했다.

운전사와 조종사의 자격과 대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몇 개월이면 딸 수 있는 운전면허와 달리 조종 면장은 3년 이상 걸린다. 신체 조건도 중요하다. 고혈압, 당뇨, 기관지 천식 환자는 결격이다. 이가 나빠도 안된다. 중력으로 인한 신체 압박을 견디고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잃는 것과 조종사를 잃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당장 인명 피해도 피해려니와 구멍난 인력을 금방 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조종사를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30일 오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_정지윤기자

그런데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그는 조종이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쉽다는 글을 올렸다. 대한항공 부기장이 “어느 분이 한 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으면 불평등하다고 하시더군요”라며 조종사들의 업무를 설명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이 같은 댓글을 단 것이다. 조 회장은 댓글에서 “운항관리사가 다 브리핑해주고 기상변화는 오퍼레이션에서 분석해준다. 조종사는 가느냐 마느냐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개가 웃어요”라고 했다. 대기업 회장이 노조원 글에 댓글을 단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다. 대한항공 노사가 임금협상 분쟁으로 감정싸움이 격화되면서 자제력을 잃은 것이다.

조 종사들은 다양한 패러디 글로 대응했다. ‘직원들이 경영관련 데이터 다 수집해주고 사장은 결재만 하면 되는데 힘들다고요? 개가 웃습니다.’ 운전보다 쉽다는 조종사를 왜 고액연봉을 주며 고용하느냐는 힐난도 많았다. 조종사 노조는 “대한항공은 운항관리사가 브리핑을 해준 적이 없다”며 허위사실로 조종사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조 회장을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항공 측은 “조 회장이 조종 근무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물은 엎질러졌다. 조 회장이 이미 ‘땅콩 회항’ 사건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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