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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사라지는 사람들

경향 신문 2012. 6. 3. 11:30

송충식 논설주간



19년 전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행려병자(行旅病者)로 오인돼 6년 넘게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네팔 여성 찬드라 쿠마리 구룽. 그는 어느 날 음식점에 갔다가 서툰 한국말로 식대문제를 놓고 다투다 경찰로 넘겨졌다. 찬드라는 ‘네팔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누구도 초라한 행색의 그를 외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네팔인 동료들이 실종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기억조차 못했다. 찬드라를 수용한 병원 측은 그의 영문 이름(Chandra Kumari Gorum)을 출입국관리소에 보냈으나 “그런 이름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관리소에 등록된 이름은 ‘Chandra Kumari Gurung’이었다는 것이다. 찬드라의 코리안 드림은 산산조각이 났다. 


(경향신문DB)



찬드라가 당한 인권침해는 이렇듯 주변 사람들의 총체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에서도 이런 황당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엊그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한 임미남씨의 사연이다. 1987년 2월12일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간 19세의 청년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신원불상의 ‘무명남(無名男)’으로 분류돼 이송된 탓에 가족은 그를 찾지 못하고 죽은 줄로 알았다. 병원 측은 그를 수술해 생명을 건졌으나 연고가 없는 그는 결국 교통사고 후유증을 이유로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임씨는 줄곧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대며 가족을 찾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 측도 담당 구청도 신원 확인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임씨는 40대 중반이 돼서야 한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돼 세상에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수풀 림, 아름다울 미, 사내 남’이라고 밝힌 그가 이토록 오랜 세월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것은 정말 미스터리다.


임씨의 사례로 추정컨대 이 밖에도 세상과 격리된 채 무명남, 무명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애타게 찾으며 통한의 세월을 보내는 가족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면 그들에 대한 편견과 불편함부터 버려야 한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임씨처럼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지 못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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