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회는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31일 새해 예산안을 가까스로 처리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여권의 ‘4대 개혁 입법’을 예산안과 연계시켜 반대하면서 처리가 늦어졌다. 예산안이 ‘새해’ 하루 전인 세밑에 처리된 것은 1961년 이후 처음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해를 넘기지는 않은 마지노선이 무너진 건, 최악의 여야 관계였던 2013년도 예산안 처리 때다. 당시 새해 예산안은 세밑 처리가 유력했으나 막판에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해를 넘겨 1월1일 오전 6시에 처리됐다. 1960년 헌법에 준예산제도가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새 회계연도 개시일을 넘긴 것이다. ‘처음’만 어려웠던 것일까. 2014년도 예산안은 또다시 자정을 넘겨 1월1일 오전 5시쯤 국회 문턱을 넘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유한국당 규탄 문구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위 사진).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장과 민주당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아래).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헌법이 정한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뭉개는 것은 물론 해를 넘기는 일이 벌어지자, 여론에 밀린 국회는 마지못해 결단(?)을 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들면서 ‘예산안 자동부의제’를 신설한 것이다. 예산안 심사를 기한(11월30일) 내에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했다. 덕분에 2015년도 새해 예산안은 2014년 12월2일 처리됐다. 2002년 이후 무려 12년 만에 ‘헌법’을 준수한 것이다. 그리고 2015년과 2016년 연달아 12월3일 꼭두새벽에 예산안이 통과됐다. 엄밀하게는 법정시한을 넘겼지만, 본회의 차수 변경을 해서라도 나름 시한을 지키려 한 결과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는 다시 예산안 법정 시한을 무력화시켰다. 2017년에는 공무원 증원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12월6일에야 예산안이 처리됐고, 2018년에는 12월8일로 더 늦어졌다.

올해 다시 새해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겼다. 정쟁과 태업으로 시간을 허비한 바람에 아직 증감액 심사도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가 예산안마저 볼모로 붙잡았다. 예산안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수 없지만, 여하튼 비정상적 ‘지각 처리’가 뻔하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또다시 입법부에 ‘헌법을 지키라’고 소리쳐야 하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20대 국회는 정말 최악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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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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