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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여적]왕따의 상처

경향 신문 2022. 6. 2. 10:42
 

청소년기 학교에서 왕따(집단따돌림)를 경험한 피해자 중 상당수는 성인기에 우울증, 비만 등 건강 문제는 물론 대인관계 어려움도 겪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간의 뇌는 심리적 외로움을 육체적 고통과 동일한 부위에서 인식한다. 집단을 이룰 때에만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개인이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유전자에 경고기능이 각인돼서라고 한다. 특히 어릴 적 왕따(집단따돌림) 트라우마는 평생 간다. 삼성서울병원이 31일 어릴 적 또래집단에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면 후유증으로 성인기에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1.84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냈다.

청소년기가 뇌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10대의 뇌> 저자 프랜시스 젠슨 박사에 따르면 뇌의 신경세포 배선 가운데 최종 20%가 청소년기에 완성된다. 빠른 학습으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빠른 학습을 가능케 하는 뇌의 가소성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왕따 피해라는 심리적 충격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영양실조가 신체의 발육부진을 초래하듯, 심한 왕따 경험이 뇌의 용적을 위축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 호르몬의 작용이다. 이에 따돌림 피해자는 학업과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비만이나 약물남용과 같은 위험에 노출된다고 한다. 우울증이나 피해망상 등으로 타인과 관계맺기도 어렵다. 청소년기 상처가 장기간 손실을 유발하는 것이다.

최근 미 텍사스주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21명을 살해한 범인은 중학교 때 ‘혀짤배기’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2007년 미 버지니아텍 총기난사의 범인 조승희도 언어 문제로 왕따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면에 퇴적된 분노와 절망이 자기 자신을 향하면 자살로 이어진다. 국내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10년째 ‘극단적 선택’인 점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교실의 질병’ 왕따 문제는 개인을 넘어선 보건·사회의 위기다. 유네스코는 매년 전 세계 2억4600만명의 아동·청소년이 사이버불링을 비롯한 학내폭력을 겪는 것으로 집계한다. 연예인들의 학폭 논란처럼 선정적으로 다뤄지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폭력적인 사회가 폭력적인 학교를 만들고, 아이들끼리의 약육강식 문화를 배양한다. 왕따를 근절하려면 우리 사회의 토양부터 돌아봐야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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