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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이른 벚꽃

경향 신문 2021. 3. 26. 09:42

25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로망스다리 일대를 찾은 시민이 벚꽃 구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봄의 시작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이 끓여주신 쑥국을 먹어야 비로소 봄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기상학적으로는 평균 기온이 5도 이상 일주일간 지속될 때 그 첫날을 봄의 시작으로 규정한다. 모든 생명은 봄을 기다린다. 그만큼 겨울이 춥고 고달프기 때문이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신석정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

가난한 사람에게도 봄은 희망이고, 고난의 시대에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 봄의 전령인 벚꽃이 피었다. 온 세상이 화사하다. 자연의 순환에 따라 무심하게 피었지만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봄을 느낀다. 서울의 벚꽃 개화 기준으로 삼는 서울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의 왕벚나무도 24일 꽃을 피웠다. 그런데 벚꽃의 개화 시기가 1922년 관측 이래 가장 이르다고 한다. 평년(4월10일)보다 17일 빠르고, 역대 가장 빨랐던 지난해(3월27일)보다도 3일이나 빠르다는 것이다.

벚꽃만이 아니라 다른 봄꽃들도 개화 시기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1981~1990년과 1991~2020년을 비교하니 매화는 10~21일, 개나리는 2~6일, 진달래는 3~5일 일찍 꽃이 피었다.

원인은 지구 온난화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전지구적으로 기록적인 폭염·홍수·태풍·한파·산불을 만들고, 봄꽃도 서둘러 피우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기온은 10년마다 0.3도씩 올라가고 있다. 1980년대와 비교해 겨울은 15일이 줄고 여름은 14일 길어졌다. 봄을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이제 봄이 빨리 오는 게 반갑지 않다. 봄이 오히려 무섭고, 야산마다 지천으로 있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낯설게 느껴진다. 긴 겨울 찬 바람을 이겨낸 꽃과 나무를 보면서도 자연에 대한 경외나 아름다움보다 불안감이 앞서니 이래저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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