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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여적]임수경 의원과 말뚝이

경향 신문 2012. 6. 4. 15:07

이승철 논설위원



탈춤놀이만큼 힘 없는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개기는’ 놀이문화가 없을 듯하다. 


“‘난양공주 영양공주 진채봉 백능화 계섬월 적경홍 가춘운의 집을 다 찾아도 서방님은커니와 아무 개아들놈도 없음디다.’ ‘이 놈 개아들이라니.’ … ‘일관암 이목골 삼청동 사직동 오궁토 육조앞 칠관암 팔각재 구리기 십자골 두루시 다 찾아도 서방님은커녕 아무 새아들놈도 없읍디다.’ ‘이 놈 새아들놈이라니.’ … ‘1원산 2강경 3파주 4마산 5삼랑 6물금 7남창 8부산을 두루시 다 찾아도 아무 내아들놈도 없음디다.’ ‘이 놈 내아들놈이라니.’”


임수경 의원 (경향신문DB)


부산 ‘수영야유계’에서 말뚝이(하인)가 왜 자신들을 찾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양반들을 상대로 치고빠지면서 개기는 한 대목이다. 말뚝이는 재치있는 풍자와 희롱으로 양반들을 마음껏 희롱한다. 말뚝이의 풍자와 양반의 꾸짖음 속에는 양반의 무능과 허세가 그대로 드러난다. 말뚝이의 개김에 가슴이 다 후련할 정도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3정승 6판서 지낸 퇴로 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역시 황해 ‘봉산탈춤’에서 말뚝이가 양반을 놀리는 대목 중 하나다. 


국어사전에 ‘개기다’는 ‘개개다’의 잘못으로 나온다. ‘개개다’는 ‘자꾸 맞닿아 마찰이 일어나면서 표면이 닳거나 해어지거나 벗어지거나 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개개다’가 과거에는 부정적인 뜻을 갖고 있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근래 들어 ‘개개다’가 힘을 잃고 대신 ‘개기다’의 사용빈도가 늘어나면서 단어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기다’라는 단어 속에 분명 탈춤의 말뚝이에게나 어울렸을 법한 비아냥과 풍자가 들어 있다. 


‘통일의 꽃’이라는 임수경 의원이 지난 1일 서울 종로의 술집에서 한 탈북자와 시비가 붙자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어디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냐”며 폭언했다고 한다. 그 말 속에는 그녀가 갖고 있는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국회의원으로서의 허위의식이 그대로 묻어난다. 


국회의원 임수경이 양반, 탈북자 백요셉이 아무래도 말뚝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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