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과 속(俗)을 둘로 구분하고자 하는 관념은 오래됐다. 삼한시대 속세에서 쫓기는 자들은 소도(蘇塗)로 도피했다. 그곳은 구원받을 수 있는 성소였다. 성과 속의 이분법에서 종교가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지난해 9월 ‘전국민주연합노조 산하 대한불교조계종지부’(조계종 노조)가 출범하자 많은 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불교 종단의 첫 노조 탄생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성과 속의 이분법’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조계종 노조는 특별하지 않다. 스님들의 노조가 아니다. 조계종단 산하의 사찰,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평범한 노조다. 이 노조가 지난 4일 자승 스님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조계종이 자승 총무원장 재임 시절 승려노후기금 마련을 위해 생수 판매 사업을 하면서 5억원 이상을 특정인에게 빼돌려 종단과 사찰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노조는 법적 고발과 함께 자승 스님에게 사실을 밝히고 참회하라고 요구했다.

보름이 지났지만 자승 스님 측은 반응이 없다. 대신 조계종 총무원이 나서 노조 간부 3명을 보직 해임하고 ‘산불피해 복구 지원’ 명목을 붙여 양양 낙산사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노조 간부들은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건 총무원의 움직임이다. 자승 스님을 조사해야 할 총무원이 대변인이 되어 비호에 앞장서고 있다.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조계종 총무부장 스님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노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낙산사 대기발령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산사 수행승은 노조를 몰라도 된다. 그러나 불교 최대 종단의 고위급 승려가 할 말은 아니다. 통념과 달리 성과 속은 둘이 아니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성과 속>에서 “성과 속은 세계 안에 있는 두 가지 존재양식”이라고 말했다. ‘성(聖)’ 자는 누군가의 말(口)에 귀(耳) 기울이는 모습에서 나왔다고 한다. 성직자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유마거사)까지 바라지 않지만, 노조 활동을 빌미로 천애 바닷가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 부처님오신날이 코앞인데, 조계종단의 자비는 요원하기만 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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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