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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여적]차등의결권

경향 신문 2020. 1. 28. 10:43

2003년 뉴질랜드계 자산운용회사인 소버린과 (주)SK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른바 소버린 사태다. 당시 소버린은 SK 주식을 싼 가격에 매집해 14.99%의 지분을 확보했다. 단일주주로는 최대주주로 등극한 소버린은 그해 11월 이사진 총사퇴, 재벌 구조 해체, 최태원 일가의 퇴진 등을 요구했다. SK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 확보에 나섰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경영권 확보에 실패한 소버린은 2005년 7월 SK 주식을 모두 외국 투자기관에 팔았다. 매각차익은 1조원에 가까웠다. 이를 계기로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튀 방지책’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차등의결권이란 ‘1주 1의결권’ 원칙에 예외를 인정하여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경영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여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주인 포드 집안이 소유한 지분은 7%이지만 차등의결권에 따라 4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하면 1주에 2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차등의결권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도 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진의 잘못을 견제할 주주들의 권한과 감시를 약화시킬 수 있다. 경영진의 방패막이로 전락해 기업소유주, 대주주의 모럴해저드만 불러올 위험성도 있다. 이럴 경우 피해는 주주의 몫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총선 2호 공약으로 ‘벤처 4대강국 실현’을 내걸면서 창업주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로 했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주주 동의를 거쳐 창업주에게 1주당 의결권 10개 한도의 주식 발행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벤처기업에 안정적인 경영권을 보장해 기업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복수의결권 주식은 현행 법제하에서도 발행 가능하다. 차등의결권 허용이 소수 주주의 권익 침해는 물론 경영세습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이유를 벤처인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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