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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테스토스테론

경향 신문 2019. 8. 2. 11:10

테스토스테론은 안드로겐(남성호르몬의 총칭)의 하나일 뿐이지만 유독 각별한 대접을 받는다. 남성의 근육은 물론 뇌까지 ‘남성적’으로 만든다는 관점 때문이다. 모험심, 경쟁심, 성적 욕망, 권력욕 등 이른바 ‘남성성’이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의 시사평론가들은 “남성이 장악한 월가에 테스토스테론이 넘쳐 위기가 온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코델리아 파인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테스토스테론 렉스>에서 ‘테스토스테론 결정론’이 비과학적 통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한때 지구 최강의 육식동물이었으나 멸종해버린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처럼 사라질 신화라고 본다. 그는 성평등이 진전된 스웨덴 사례를 들며 “위험 감수의 측면에서 성차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백인과 비백인 사이에선 차이가 나타났다”고 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남성적’ 특징이 아니라 ‘지배적 집단’의 특징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과학의 영역에선 신화가 무너져내리고 있지만, 스포츠 영역에선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남아공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28)가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9월 열리는 카타르 세계육상선수권에 나가기 어렵게 됐다. 세메냐는 2012·2016 올림픽에서 여자 800m 2연패를 달성한 스타다. 그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반 여성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이유로 성별 논란에 시달려왔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스위스 연방대법원은 “세메냐가 수치를 낮춰야 800m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자 선수가 400m~1마일(약 1600m) 종목에 출전하려면 6개월 이상 수치를 5nmol/ℓ(리터당 나노몰)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세메냐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으나 기각되자 스위스 연방대법원에 항소했다.

IAAF는 성별 규정이 공정성을 위한 것일 뿐 차별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공정성을 위해 타고난 호르몬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한다면, 키가 지나치게 큰 사람들은 농구나 배구를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남자 선수 중에도 일반 남성보다 테스토스테론이 훨씬 많은 이는 출전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닐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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