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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필리핀 가사도우미

경향 신문 2018. 5. 25. 10:34

세계 최대 가사도우미 송출국인 필리핀은 지난 3개월간 쿠웨이트와 첨예한 외교 갈등을 빚었다. 올해 2월 쿠웨이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필리핀 여성이 살해된 뒤 1년 넘게 아파트 냉동고에 방치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필리핀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인은 누구의 노예도 아니다”라며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노동자 25만명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필리핀 외교부가 지난달 쿠웨이트 집주인에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호소한 가사도우미 26명을 필리핀 대사관으로 탈출시키자 쿠웨이트 정부는 “주권침해 행위”라며 자국 주재 필리핀 대사를 추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악화일로를 치닫던 ‘가사도우미 분쟁’은 지난 11일 쿠웨이트에 취업한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인권을 보호하는 협약이 체결되면서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연수생으로 위장취업시킨 뒤 불법으로 고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4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면서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해외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는 1000만명가량으로 전체 인구(1억600만명)의 10%에 육박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해외 체류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은 연간 300억달러가량으로 국내총생산의 9%를 차지한다. 해외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들이 필리핀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데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해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 인기가 높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4일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모친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함께 지난 10여년간 필리핀 노동자 20여명을 대한항공 연수생으로 가장해 입국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재외동포나 결혼이민자, 방문취업 자격 소지자 등 내국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이들로 제한된다. 출입국당국은 대한항공 총수 일가가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는지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의 인권침해 행위에 강경 대응하고 있는 필리핀 정부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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