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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효자 태풍

경향 신문 2018. 8. 21. 11:13

태풍(颱風)의 한자 ‘태(颱)’자가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634년 출간된 <복건통지(福建通志)>(56권 土風志)에서다. 태풍을 일컫는 영어 ‘typhoon’은 그보다 앞선 16세기 영국에서 그 흔적이 보인다. 옛날 중국에서는 회전하는 바람을 통틀어 구풍(구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아라비아에 전해지면서 tufan(뱅글뱅글 돈다는 뜻)으로 바뀌었고, 다시 typhoon으로 발전한 것으로 어원학자들은 추정한다. 태풍의 속성이 회전이라는 점을 동서양이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21일 오전 10시 기준 태풍정보. 기상청 제공

태풍은 거대한 공기의 소용돌이다. 열대지방에서 공기가 기압이 낮은 중심부를 향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빨려들어가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곧 태풍이다. 해상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상공으로 올라가고 이때 수증기가 응결하여 거대한 적란운이 형성되면서 많은 비가 내린다. 수증기가 응결해 구름방울이 될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큰 폭풍을 만들고, 나아가 소용돌이를 유지하는 것이 태풍의 메커니즘이다. 태풍은 대개 북서쪽으로 가다 전향점에서 북동으로 진로를 바꿔 포물선 형태로 진행한다. 태풍의 오른쪽 반경에 든 지역의 피해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1994년 여름 한반도 주변 태풍들은 통상적인 태풍과 거리가 멀었다. 올해와 같은 무더위 속에 태풍들은 예측불허의 갈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북상 중 세력을 잃는 듯하다가 다시 힘을 얻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보였다. 뜨거워진 바다가 죽어가는 태풍에 새 에너지를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태풍은 방향을 바꿔 남해안에서 한참 배회한 경우도 있었다. 별 피해 없이 무더위를 몰아내고 가뭄을 해소했다고 해서 ‘효자 태풍’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북상 중인 19호 태풍 솔릭의 형세가 심상치 않다. 중형급 태풍으로 6년 만에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한다. 22일 밤 제주를 거쳐 23일 새벽 목포로 상륙했다가 24일 새벽 속초 쪽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강풍과 너울, 그리고 제주와 남해안, 지리산에 최대 400㎜ 폭우를 예보했다. 급격히 세력이 약화되거나 진로를 바꿀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한다. 무더위에 효자 태풍을 기다렸더니 고약한 놈이 오고 있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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