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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후궁

경향 신문 2021. 1. 28. 09:44

지난해 1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청와대 조직과 기능 개편에 대해 발표하러 입장하고 있는 고민정 당시 대변인. 청와대사진기자단

‘후궁’이라는 말이 27일 정치권을 종일 달궜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전날 페이스북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4·15 총선에서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았다며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 발단이었다. 조 의원은 최근 고 의원이 지난 총선 상대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향해 “(서울) 광진을 주민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고 비난한 발언을 거론하며 “‘산 권력’의 힘을 업고 당선됐다면 더더욱 겸손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후궁(後宮)은 원래 중국 황제가 거처하는 궁중의 전전(前殿) 뒤에 있는 깊숙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임금의 첩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대하소설에서 후궁은 흔히 아첨하는 말로 군왕의 마음을 빼앗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아 계략을 꾸미는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특히 왕자를 낳은 후궁의 기세는 등등했다. 자신의 소생 왕자를 미래 권력인 세자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다. 조선시대 숙종의 후궁이던 장희빈, 연산군의 후궁이던 장녹수 등이 이런 악인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오늘날 후궁은 현실에서는 사용할 대상이 없는 박제화한 말이다. 무엇보다 여성을 성 상품화 내지 악마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론 정치인이라면 더욱 꺼내서는 안 될 말이다. 그런데 조 의원은 이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동료 의원을 향해 던졌다. 나아가 고 의원을 향해 “문재인 정부가 아끼고 사랑하는”이라는 말도 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조 의원은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페이스북에 또다시 “인신공격, 막말을 한 사람은 고민정”이라고 주장했다. 기자 출신에 제1야당 수석대변인까지 지낸 정치인의 말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조 의원은 이날 비례대표 의원으로 재산을 누락신고한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벌금 액수가 100만원 이하여서 의원직은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조 의원은 의정 활동 내내 후궁 발언에 발목 잡힐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이 아무리 당명을 바꾸고 전직 대통령 과오를 사과하면 무슨 소용인가. 한 소속 의원의 망언이 당의 환골탈태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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