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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이후 두 주요 정당은 ‘못하기 경쟁’에라도 돌입한 듯하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대단히 분명했다. 민심은 한 정당에 경고를 했고, 다른 정당에는 잘한 것은 없지만 기회를 주었다. 당연히 민심의 진의를 깨닫고 행동하는 쪽이 유리하다. 그런데 두 정당 모두 국민의 선의를 걷어차고 있다. 패배한 정당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잘한 것 없는 정당은 막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선 직접적인 요인은 눈앞의 이익이다. 현재 두 정당에서 모두 당심은 민심과 크게 유리되어 있다. 당사자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다만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당내 선거에서는 민심을 무시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선택은 한국 정치는 물론이고 자기 정당의 미래조차 어둡게 만드는 일이다. 나름의 합리적 동기도 존재한다. 우리가 민심으로부터 좀 멀어진다고 해도 상대방이 더 멀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두 정당에서 모두 상식적으로 정치에 임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국민을 위한 정책을 섬세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튀어보여서 눈길을 끌어보려는 시도들이 난무한다.

이런 정도의 이기심이나 무책임은 그래도 괜찮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민주주의와 정치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아집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그 정도의 신념이 있어야 정치도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인 이상, 적어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척은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다.

신념은 그것이 국민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 유효하다. 그것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다. 신념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할 때, 그 신념은 물러서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신념과 아집은 다르다. 신념은 당장은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 정당성을 다수의 국민이 인정해 줄 만한 것이다. 아집은 다수의 국민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계속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신념이 승리한 적은 있지만, 아집이 살아남은 적은 없다.

한국의 정치가 과거 어느 때보다 타락하고 오만해졌다는 것은, 선거 이후 유권자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특히 지난 4번의 선거에서 국민을 칭송했던 정당이 한 번의 작은 패배에서 국민을 탓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던, 그 정치인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나? 언제나 그렇지만 국민을 이긴 정치인은 없다.

민주화 이후 유권자들은 대체로 늘 냉철했다. 국민들은 때에 따라 필요한 정치인을 골라서 책임을 맡기고, 또 그 책임을 엄하게 물었다. 지금 국민들 다수는 도덕적으로 불감증에 걸렸거나 정보가 부족해서 투표를 잘못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익을 위해 투표하고, 누군가는 이익에 반해서라도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투표한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고 덜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두 정당의 열혈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상대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되고 무능하고 부패한지를 국민들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적어도 1997년 이후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래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에 있다. 민주주의는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정당들이 점점 더 소수에 포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경제적 양극화, 기업의 로비, 전문가와 관료에 대한 의존, 엘리트들의 카르텔이 강화된 결과다. 여기에 분노와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하는 언론들이 더욱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이기적이고, 선동적이고, 아집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여론인 양 침소봉대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나온 표피적 여론조사 결과를 대단한 증거인 양 제시한다.

민주주의에서도 정치는 언제나 실패할 수 있다. 정치의 실패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는 정치 혐오다. 정치 혐오는 그것이 단순히 혐오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혐오를 더욱 구축하기 때문에 나쁘다. 나쁜 정치인들은 정치 혐오를 반긴다. 정치 혐오가 그들의 생존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은 정치에 있다. 정치 이외의 수단으로 우리가 공적인 결정을 내릴 방법은 없다. 정치란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것을 하려는 것이다. 타협과 조정을 두려워 않는 정치인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정치를 비판하되, 정치를 존중하는 정치인을 우리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다수의 국민에게 귀 기울이는 정치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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