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당시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던 딸이 남자친구를 본격적으로 사귀면서 연애질을 시작하였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에 다니던 큰아이는 나에게 여동생의 연애상황에 대하여 시기심과 분기탱천에 기반하여 실시간 목격담을 보고하였다. 사실 당시 나의 걱정은 딱 하나였다. ‘아직 아이들한테 콘돔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시간은 흘러갔다. 지난 주말에 둘째가 나에게 발칙한 투고를 해왔다. 


“엄마, 오빠 여자친구 사귀는 거 알아요?” “어휴, 근데 그 언니 있잖아. 얼굴이… (어쩌구 저쩌구).” 이제 대입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3수험생이 웬 이성친구냐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나는 ‘부족한 내 아이를 부탁드리옵나이다’라며 그 여학생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고보니 완전범죄가 안되는지라 책상 위에는 2명이 함께 본 영화관 티켓과 음료 영수증이 참고서와 함께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대입 수능을 앞두고 긴장되고 불안한 상황에서 자기를 생각해주는, 가끔 만나서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여자친구와의 소중하고 귀한 순간을 빼앗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렇듯 사랑은 가족 밖에서 싹트고 있다.



위험한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항시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불확실하고 위험천만한 사회에서 개인들은 소위 살아남기 위하여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순될 수 있지만 구속감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갈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과 상대방을 묶어주는 단단한 끈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갖고 있으면서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것이다. 불안한 만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아주고 지지해주는 존재에 대한 욕망도 크다. 따라서 이제 고등학생들은 물론 유치원생조차도 관심을 갖는 ‘연애에 대한 열망’은 그것이 타인과 자신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수 있다.


불안하고 위험천만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친밀함(intimacy)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 공적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이 거칠고 험하다고 느낄수록 ‘아늑하고 안전한 가정’을 꿈꾸게 되기 쉽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가족관계가 거칠고 험하다고 여겨지면 당연히 사랑은 가족 밖에서 갈구하기 쉽다. 가족은 점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고, 사랑은 거리에서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대한민국 사회 수많은 거리의 모텔. 그 공간에서 수많은 계층, 혼인관련 다양한 신분을 갖고 있는 연인들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5월은 가족 간 만남이 잦은 달이고 가족들 간 “사랑해요”라는 말과 글을 가장 많이 나누게 되는 때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5월5일(어린이날), 5월8일(어버이날), 5월21일(부부의날) 등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 등과 관련하여 특정 일자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이것은 어린이가 평상시에 학대당하고 어버이가 무시당하며 부부관계의 친밀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것을 국가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 아닐까? 오죽하면 온 국민이 자주 사용하는 제품의 CF 가사가 “조강지처가 좋더라~”일까? ‘가족 밖’ 사랑 경험 후 돌아온 탕자의 고백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주변의 아파하는 조강지처들을 많이 보아서일까? 가족 밖에서 번성하는 사랑이 가족 안에서도 열매 맺을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주택과 교육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불안과 위험이 조금씩 감소되어야만 가능하다.


더 이상 부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파탄한 관계는 혼인관계를 청산할 수 있도록 현행 이혼제도의 변화도 수반되어야 하고 이혼 후 생계와 자녀부양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더 큰 사회와 국가가 가족관계에 부여하는 무거운 의미와 가치를 상호 공유할 수 있을 때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도 애정에 기반하여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우리집 두 고등학생 남매의 커플들을 언제쯤 우리집에 불러모아 피임실습을 해야 한다나?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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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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