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담벼락에


뜨겁게 너울지더니 능소화


비었다 담벼락에


휘휘 늘어져 잘도 타오르더니 여름 능소화


꽃 떨구었다 그 집 담벼락에


따라갈래 따라갈래 달려가더니 여름내 능소화


노래 멈췄다 술래만 남은 그 옛집 담벼락에


첨밀밀첨밀밀 머물다 그래그래 지더니 올여름 장맛비에 능소화


그래 옛일 되었다 가을 든 네 집 담벼락에


- 정끝별(1964~)


여름이 오고 능소화가 피었다.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능소화가 피었다. 여름 내내 능소화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듯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운다. 달군 솥처럼 뜨거운 하늘 아래에 열정적으로 꽃을 피운다. 그처럼 옛집 담벼락에도 능소화가 여름을 살다 갔다. 옛집 골목과 담 아래에는 노래와 이야기와 달콤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 옛집 담벼락에 능소화도 다 졌지만.

시인은 시 ‘나침바늘을 보다’에서 “낮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물을 켜야 한다고/ 밤이 노래한다 꽃을 위해 불을 켜야 한다고”라고 썼다. 우리의 낮과 밤이 삶이라는 꽃의 개화를 돕던 시절이 있었다. 화관을 쓴 듯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물론 우리의 마음이 사랑에 빠진 듯이, 염천처럼 뜨겁기만 하다면 꽃은 언제든지 필 것이다. 여름날의 능소화처럼 우리의 담벼락에 “뚜뚜랄라 따따룰루/ 명랑한 열망”으로 피어 함께 삶을 합주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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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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