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는 순간 21g이 줄어든다고 한다. 21g, 그것은 영혼의 무게일까? 5센트 동전 5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21그램>의 마지막 독백이다. 가장 작은 새인 벌새를 직접 본 적 없지만 대략 꿀벌만 하지 않을까. 꿀벌 한 마리 현호색의 꽃대궁을 붙들고 땅에 닿을 듯 휘청, 구부러지는 것을 보며 저게 바로 내 영혼의 무게이려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의 생태계에서 영화 <벌새>에 대한 주위의 강력한 평을 들었다. 안 보고는 그나마 있던 내 영혼이 증발할 것만 같았다.

화면에서 보는 아파트는 참 다닥다닥한 공간이었다. 현관 열고 세상에서 묻힌 먼지투성이의 신발 벗으면 곧바로 거실이고, 문 하나로 바로 방이다. 피하고 싶은 일이 벌어질 때 숨을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떡집 막내딸인 은희는 중학생. 왼손으로 만화를 그리면서 가슴속 질문 하나는 그래도 붙들고 생활한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가족은 물론 학교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은희를 상대해 준 이는 한문학원 선생님이다. 왼손으로 한자를 잘 쓰는 그는 은희 마음에 한 획을 그어주며 스케치북을 선물한다.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흰 종이가 사무치게 좋았나. 연필로 만화를 그리듯 손바닥으로 백지를 쓰다듬는 은희.

영화에는 나무가 표나지 않게 자주 등장한다. 친구와 헤어지는 곳도 다시 만나는 곳도 나무 아래에서다. 가장 크게 클로즈업되는 당단풍나무는 가을의 복판에서 프로펠러 같은 열매가 성숙하고 있다. 있던 곳의 그늘을 피해 되도록 멀리 날아가기 위해 저런 장치를 가진 것이다. 벌새는 무수한 날갯짓으로 공중에서 정지하여 꿀을 빨아먹는다. 은희는 가끔 벌새처럼 뛰어오르지만 공중에 머물 수는 없다. 중력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그 삶의 무거움을 스스로 이겨내어야 하는 건 본인뿐이다. 영혼의 무게만 한 무거움에 휘청이던 현호색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영화 속 나무로 글을 마무리하자. 

벌새의 날갯짓처럼 눈을 반짝거리는 은희, 가슴속 한 획을 붙들고 당단풍나무 열매처럼 멀리 회오리쳐 날아가기를! 당단풍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  (0) 2019.10.14
심학산의 개여뀌  (0) 2019.10.01
영화 <벌새>와 당단풍나무  (0) 2019.09.24
파주 화석정의 향나무  (0) 2019.09.17
금병산의 신갈나무  (0) 2019.09.10
벌초하는 무덤가의 꽃며느리밥풀  (0) 2019.09.0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