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이면 외교부 기자실은 ‘외교문서 시즌’에 돌입한다. 외교부가 기밀유지 연한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들을 공개하기에 앞서 기사 작성을 돕기 위해 미리 배포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1988년 생산된 외교 문서 25만여쪽을 담은 USB가 전달됐다. 문서량이 엄청나다보니 기자들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2주 남짓 되는 기간 동안 각자 맡은 분량을 샅샅이 검토해서 주요 내용을 요약해야 한다.

의무감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외교 현장을 생생한 육성으로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다. 사관이 사초를 남긴다면, 외교관은 전문으로 존재를 증명하지 않던가.

그런데 할당된 문서 7500여쪽을 살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문서철 중 일부는 “공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부 심사에서 다시 5년간 비공개로 전환된 문서들이었다. 상당수는 이미 일반 문서로 분류된 ‘3급 기밀’에 해당했다. 내용 면에서부터 새롭게 보도할 만한 사실을 찾아내기에 제약이 따랐다. 

인위적으로 공개 시점을 정해놓은 부분도 마음에 걸렸다. 현안을 챙기고 취재원들을 만나는 와중에 2주 동안 방대한 양의 문서를 공들여 분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교부는 2019년도 외교문서 공개율은 88%로 지난해보다도 약 2% 증가했으며, 개인정보나 상대국에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밀문서 공개율이 70%에도 못 미치는 미국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외교행정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시작된 외교문서 공개 의의를 살리려면, 더 나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우선 소수의 퇴직 외교관과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지는 공개 대상 문서 심사에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3년쯤 후에는 매년 공개되는 문서의 양이 지금보다 두 배 늘어나는 ‘외교문서 홍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외교문서 분류·이관을 담당하는 인력 확충도 시급해 보인다.

<김유진 | 정치부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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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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