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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화수목금토. 일주일을 한 묶음으로 떼굴떼굴 굴러가는 세속도시의 일상이다. 요일마다 얼굴은 다 달라진다. 웃음과 울음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하지만 표정은 돌처럼 딱딱해진 지 오래다. 

주중에도 고개가 있는가. 수요일을 기점으로 어디론가 내려가는 느낌이다. 금요일. 얼굴이 마구 뜯겨나가 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귀가하다가 흑석동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광고판을 보았다.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영월 창령사터 오백 나한(사진).’ 큼지막한 돌덩이의 울먹이려는 표정이 목석같던 나의 뒷덜미를 끌어당겼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공간에서 단연 돋보였기에 휴대폰에 찰칵, 담았다. 그리고 몇 바퀴가 굴렀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칼럼 ‘래여애반다라’(조운찬)를 읽은 아침, 뜻밖에도 춘천 출신의 아내가 창령사터 나한 이야기를 꺼냈다.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정밀한 고독과 숨막히는 고요가 밀물처럼 들어찼다. “마치 허공을 나는 새가 걸림 없이 멀리 가는 것처럼”(법구경) 컴컴한 공중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있어 이름을 문의했지만 아는 이 아무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이들의 불성을 깨우쳐주시는 나한은 좌대에 앉아서 나와 어깨를 견주었다. 시골 뒷산에서 흔히 보았던 질감의 돌이다. 전시장의 나한은 보는 이들과 분리되지 않았다. 싸늘한 유리로 격리되지도 않았다. 나는 자유로이 나한 사이에 섞인다. 어쩌면 이 순간은 나도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이다. 나한들도 나를 구경하고 있는 중이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얼굴을 가져가는 듯했다. 외할머니를 모시고 나오는 길. “단단한 돌덩이 오래됐단 말 말게. 무생(無生)에 견주어 보면 찰나간인 걸.”(청허 휴정) 박물관에 입장할 때 왼편으로 본 나무는 오른편에서 여전히 피어 있다. 요즘은 산에 가도 봄과 가을의 사이에서 꽃이 잠깐 주춤하는 시기. 그 허전한 간극을 감당하듯 홀로 핀 산딸나무다. 관상수로 심었지만 용산을 후원하는 저 남산의 기운이 흠뻑 배었다. 다음 산에서 만나면 보리수 아래 정등각을 깨친 부처처럼 창령사터 오백 나한을 떠올려야지! 산딸나무, 층층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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