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새로운 초국적 협치체제를 만들 거라는 주장이 한동안 유행했다. 절대주권을 가진 국가가 명확하게 구획된 영토 안에 사는 자국민을 통치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섣부른 주장도 나왔다. 영토의 경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사회적 삶이 그러한 주장의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주의 지구화, 기업의 초국적 활동,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가능해진 초국적 공론장, 온난화와 같은 지구적 환경문제, 초국적 테러리즘 등이 그러한 예다. 낙관적 전망과 달리 아직 이에 대처하기 위한 초국적 협치체제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개별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초국적 재난이 주기적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번 전 세계의 문제가 된 코로나19도 그러한 재난의 하나다. 초국적 협치체제가 부실한 틈을 타고 재난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정의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먼저 코로나19를 특정 지역주민의 문제로 지역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일부 언론이 코로나19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국지적인 폐렴으로 프레임했다. 코로나19의 전파자인 중국 우한 주민의 입국을 원천 봉쇄하자는 주장을 쏟아냈다. 정부가 이러한 프레임을 따르지 않자 코로나19 확산을 친중좌파 정권의 눈치보기와 무능력의 문제로 정치화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작게는 우한 주민, 크게는 중국 국민 전체를 바이러스를 무차별적으로 퍼트리는 미개한 인종으로 비하했다.

감염자 수가 한동안 통제되는 듯하자 이러한 인종주의 프레임이 잦아들었다.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대규모로 나왔다. 이미 이단으로 낙인찍힌 신천지교회를 사회악을 퍼트리는 괴기한 밀교 집단으로 프레임했다. 사회에 복된 소리를 전하는 미션을 다하고 악한 소리를 쏟아내는 주류 종교집단이 선봉에 섰다. 누가 이단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기는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절대악으로 몰릴 지경에 이르자 신천지교회가 부랴부랴 정부에 협조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제 감염원인 신천지 교인만 격리, 전수조사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대구·경북에 감염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여러 나라에서 한국 국민의 입국을 막았다. 어떤 나라는 대구·경북에서 온 지역민만 콕 골라내 입국을 막았다. 자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코로나19 감염원을 한국으로 지역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국내에서도 대구·경북을 봉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고, 서울특별시민만 국민이냐는 볼멘 반론이 나왔다. 이참에 정치권은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를 부추기며 정치적 이득 추구에 몰두했다. 그러자 SNS가 혐오의 언어로 도배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특유의 보수성으로 시간의 실향민 취급받던 대구·경북이 졸지에 코로나19의 창궐지역으로 오염되었다. 대구·경북 주민은 공중위생을 관리할 역량조차 없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토착민으로 전락했다.

갈수록 일상의 삶이 탈영토화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탈영토화란 상호 연계와 의존의 네트워크가 급속히 발전하고 그 안에서 개인적, 사회적,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지구적 차원들이 상호작용하는 밀도가 높은 상태를 말한다. 원인과 결과라는 선형적 모델을 통해 상호작용의 과정과 후과를 예측·통제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는 전례가 없어 누가 당사자인지 가늠하기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특정한 인종, 종교, 지역에 당사자를 한정하고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쏟아내면 안된다. 인종, 종교, 지역과 상관없이 원치 않아도 영향받는 사람이라면 모두 당사자다.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지구적 차원까지 모두 포괄하는 다차원적인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당사자인 우리가 서로 연대와 포용의 언어를 써서 소통하고 이를 통해 함께 문제 상황을 정의하고 해결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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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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