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에 여당 관계자를 만났는데, 여당 내부에는 여전히 ‘선거법은 자유한국당과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말 자체의 타당성을 떠나 ‘참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의 한국당과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합리적 대화가 가능하리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나경원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확고한 방향을 정했다. 그것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통해서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이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하에서는 최대한 몸집을 키워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당과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 가능한가?

역시 예상대로 한국당은 전혀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8월29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협력하여 정치개혁특위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처리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11월27일 이후에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재적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면 선거법 개정안은 통과된다. 한국당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통과가 가능한 상황이다.

주목할 것은,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 시점이 2020년 예산안 처리 시기와 맞물린다는 것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예산안 처리가 절박한데,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의 협조 없이는 예산안 처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여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예산안, 선거제도 개혁, 검찰개혁을 묶어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은 수동적으로 개혁에 임할 것이 아니라, 개혁을 통해 적극적으로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막상 본회의 표결을 앞두게 되면, 한국당 의원들도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한국당은 총선 때까지 ‘여당 발목잡기’로 일관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당 입장에서도 한국당에 더 이상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여당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없다. 민주당은 더 이상 ‘한국당과 합의처리’ 운운할 것이 아니라,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개혁연대를 형성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 공수처법 등의 개혁입법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당이 두 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 첫째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다. 지금 선거제도 개혁을 완수하려면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법 개정안에는 지역구 숫자를 253개에서 225개로 줄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구 숫자를 28개나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지역구가 통폐합되는 현역 의원들의 반발도 문제지만,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도 반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구 숫자를 줄이기보다는 전체 국회의원 숫자를 10% 정도 늘리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원을 330명으로 늘리고, 늘어나는 의석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역구를 줄이지 않고서도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 특권 폐지다. 1억5000만원이 넘는 과도한 연봉을 줄이고, 9명의 개인보좌진도 7명 선으로 줄여야 한다. 그 외에도 각종 낭비되는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국회 감사위원회를 신설해서 앞으로 국회의원들의 위법행위, 윤리위반 행위들을 철저하게 감시·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이렇게 하면 10% 정도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내년 총선 이후에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개혁의 입구라면, 헌법 개정은 정치개혁의 출구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보완하는 길을 택하든, 아예 다른 정부 형태를 택하든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시스템을 손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총선 전 헌법 개정은 어렵지만, 총선 후 2020년 말까지 헌법 개정을 완수하겠다는 여당의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당 일부의 안일한 의식이다. 어떤 여당 의원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에게 무슨 특권이 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야말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말로만 해서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것이 내년부터 국회의원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다. 이것은 별도 입법없이도 가능하다. 어차피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별표에 나와 있는 국회의원 연간 수당은 1216만8000원이다(월 101만4000원). 그것을 국회 내부 규정으로 인상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문희상 의장이 국회 내부 규정만 바꾸고, 여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합의하여 내년도 국회 예산에서 국회의원 연봉을 대폭 삭감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당이 이 시대적 과제를 거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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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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