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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어느 날 저녁. 땅거미가 진 경기도소방학교 훈련탑 밑에 한 무리의 새내기 소방관들이 모여 있다. 이미 하루 훈련을 다 소화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아쉬운 것이 있나 보다. 그들을 잠시 지켜보면서 1995년 서울 구로소방서에 처음으로 발령받았던 나의 신임 소방관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순수함과 열정으로 가득 찼으며 대한민국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하게 무장된 시절이었다.

때로는 출동벨 소리에 식사를 거르기도 하고, 난생 처음으로 죽은 시신을 수습하며 무서워하기도 했다. 화재현장에서 울부짖는 희생자들의 눈물을 보며 나도 마음속으로 울었으며, 대형화재라도 있을라치면 현장에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화재와 싸우기도 했다.

위험물질 사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불을 끄고 세수를 하면서 왜 검은 가루가 코에서 나오는지 신기해하는 어리석은 일도 있었다.

먼 지방에서 올라오느라 결혼식장을 찾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구급차로 모셔 간신히 예식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을 때 많은 하객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우리 구급차는 또 그렇게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 소방검열관


동료 소방관이 순직했다는 기사를 들으면 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생겨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고, 소방서에 찾아와 감사하다고 말하는 시민들을 만나면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가기도 했다. 인생이 오욕칠정을 알아 가는 과정이라면 과연 소방만한 곳이 있을까 싶다. 세월이 흘러 소방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새 19년이 되었다.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을 거쳐 주한미군으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 나는 어느새 대한민국 소방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한 명의 소방인이 되었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내가 바로 그 모양새다.

소방인이란 누구인가? 필자는 소방인을 대한민국 영토 내에 거주하는 사람 (외국인 포함)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소방과 관련된 분야에서 종사하거나, 소방과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거나 또는 교육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많은 소방인들이 소방과 인연을 맺은 데에는 각자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향후 유망한 직업이여서든, 지인의 추천이든 하는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소방인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한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소방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전 한 언론자료에서 소방공사 감리업체의 허위 보고서 제출이 만연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또한 4000개가 훨씬 넘는 불량 불꽃감지기가 무려 400개가 넘는 대상물에 설치되었다고도 한다. 중국산 소화기가 국산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전국 100여 곳의 대형빌딩 등에 방염처리가 날림으로 시공되기도 했다.

일부 소방관은 비리에 연루되기도 하고 조직 내에서 직위를 이용한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요즈음 대한민국 소방인들은 소방이라는 옷을 입고 저마다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국가직, 지방직, 조직 이기주의, 출세, 자리보전, 선배와 후배, 자신의 이익추구, 무사안일, 순환보직 ….

세월호 참사에 대응해야 했던 많은 부서들이 국민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역할마저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질타를 받았다. 해경과 해수부는 과연 어떤 꿈들을 꾸었기에 자신들의 역할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내가 소방인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우리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같은 꿈을 꾸고 있는가? 그리고 그 꿈을 위하여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해경과 해수부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한민국 소방인들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라고 묻고 싶다.

늦은 저녁 훈련탑 아래서 훌륭한 소방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새내기들처럼 맨 처음 소방과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자. 순수하고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을 말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소방인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소방인이 같은 꿈을 꾸며 앞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소방인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하고 나는 지금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 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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