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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이건 세입자가 너무했네

경향 신문 2021. 3. 30. 09:40

‘이건 세입자가 너무 했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인의 회사가 사무실로 쓰기 위한 건물을 매입하며 생긴 일을 전해 듣고 그랬다.

건물주가 6월에 오를 세금에 부담을 느껴 급하게 내놓은 매물이었다. 건물 가격이 많이 올라 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 양도세의 부담이 커질 것이 빤했다. 급매물 특성상 시세보다 저렴해 회사 대표는 이 건물을 사기로 했다.

문제는 건물의 용도변경 때문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계약기간이 남은 이들도 있었다. 계약기간 중 이사 요구는 임차인의 주거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래서 이때 임대인이 보증금과 별도로 ‘이사비’를 지원하는 것이 관례다. 실질적인 용역비용 및 중개수수료에 더해, 옮길 곳을 알아보는 과정의 시간소모와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보상하는 것이다. 비용은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계약 조건과 협상 주체 재량에 따라 적으면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른다. 임차인 계약갱신요구권 도입 이후에는 1000만원까지 지불되는 경우도 있다.

건물 한 채가 전 재산인 매도인의 현금 흐름은 좋지 않았다. 그의 건물에는 그와 배우자도 살고 있었고, 임대 수익은 건물 가격 대비 크지 않아 흔히 생각하는 부자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큰 욕심 없이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산 것 같다. 가장 오래 거주한 세입자가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한 번도 월세를 올려 받지 않은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그 세입자가 이사비로 1억원을 요구했다. 1000만원까지는 지불할 용의가 있던 매도인은 황당했다. 대화를 시도해도 “됐고, 1억원. 안 그러면 계약 끝나고 계약갱신요구권까지 쓸 것”이란 입장을 고집하는 세입자에게 분통이 터진 매도인의 입장도 바뀌었다. “6월 넘겨 세금을 내고 말지, 네 녀석에게 이사비 한 푼도 못 주겠다”는 것. 감정싸움으로 흐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다른 모든 세입자들은 적정선의 이사비를 받고 이사 날짜를 확약한 계약서를 작성했다.

시세차익을 노리며 건물을 사고팔고, 세입자 역시 권리를 가진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건물매매의 장애물쯤으로 취급하며 고통 주고 벼랑 끝까지 내모는 건물주를 왕왕 목격했다. 하지만 이 매도인은 세금이 오르지 않았으면 사망할 때까지 여기 거주했을지도 모르는, 크게 탐욕스러운 편이 아니며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인물 같았다. 세입자의 권리도 비교적 인정하는 편으로 보였다. 그런 이에게 1억원의 이사비를 요구한 세입자는 자신이 협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극한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 오히려 건물주가 딱하게 느껴졌다.

이런 날이 오다니…. 임차인의 권리 보장을 확대한 법 개정 때문이다. 그 전에는 임대인에게 유리한 조항이 지나치게 많아 도무지 건물주를 딱하게 여길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일부 언론은 세입자의 권리 보장을 확대한 제도의 개선 방향 자체를 비판하던데, 나는 방향은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사회가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중일뿐. 우리가 좀 더 배려하고 ‘서로’ 만족하는 협상을 해나가며 이 시기를 통과하길 바란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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