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슈트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매진 않았지만 가죽 재질로 된 백팩을 메고 있었고, 구두도 깨끗했다. 회사에서 막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았다. 머리카락은 짧았고, 햇빛 한번 쐬지 못한 사람처럼 피부가 희멀겋다. 남자는 한참 동안 편의점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캔 커피 하나를 골라 카운터에 내밀었다. 정용은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포스기를 찍었다.

“이거 원 플러스 원인데요. 하나 더 가져오셔도….”

남자는 정용의 말에 다시 느리게 캔 커피 하나를 더 가져왔다.

“이건 그쪽이 드세요.”

정용은 남자가 내미는 캔 커피를 받고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남자는 편의점 내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면서 캔 커피를 마셨다.

정용은 캔 커피를 무연히 바라보았다. 입맛이 쓰고, 약간 현기증도 느껴졌다. 오전 10시부터 근무했으니까 꼬박 12시간째였다. 정용은 원래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만 일했다. 오전 근무자가 있었는데, 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오십 대에 접어든 점장은 그 시간대 알바를 바로 뽑지 않았다.

“내가 하지 뭐. 장사도 안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점장은 자주 정용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른 지방에 갈 일이 생겼다고, 세무서에 다녀와야 한다고, 몸이 좀 안 좋은 거 같다며, 계속 정용에게 대타를 부탁했다. 정용은 그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하지 못했다. 알바들의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PC방들은 문 닫은 곳이 더 많았고, 카페들은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극장에서 한꺼번에 밀려난 사람들도 대거 알바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전염병의 나날. 고용주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알바들의 고통은 더 분절된 형태로 오는 것 같았다. 고통도 시급으로 왔다.

정용은 남자가 건넨 캔 커피를 따 한 모금 마셨다. 남자는 정용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는 견고한 직장인. 지금 시간 말고, 지금까지 쌓아온 나머지 시간으로 급여가 결정되는 삶이란 무엇일까? 정용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캔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정용과 남자의 시간의 크기는 엄연히 달라 보였다. 

두 명의 여고생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여고생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정용에겐 또 낯설어 보였다. 요샌 다들 학교에 안 가지 않나? 여고생들은 한참을 컵라면 코너 앞에 서 있다가 불닭볶음면 두 개를 들고 카운터 앞으로 왔다. “미친!” “이게 웬 개고생이야.” 여고생들은 카운터 앞에 서서도 계속 투덜거렸다. 무언가 약속이 어긋난 듯 보였다. “우리 팔자에 무슨 알바라고.” “내 말이.” 둘은 그렇게 인상을 쓰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테이블에 컵라면을 올려놓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난 있지, 학교 안 가니까 몸무게가 더 빠진 거 있지?” “당연하지. 네가 그동안 매점에서 처먹은 걸 생각해봐.” “어휴, 그럼 난 몸무게 생각해서 이 기회에 자퇴해야 하나?” “너, 그러면 완전 영양실조 올걸?” 둘은 그렇게 까르르 웃어댔고, 그러면서도 또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열라, 열 받다가 먹으니까 제대로 열 오르네.”

여고생들 뒤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콜라 한 캔을 더 사면서 바나나우유 두 개도 더 계산했다. 그러더니 그걸 여고생들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시 자기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앉았다. 여고생들은 가만히 바나나우유를 바라보다가 저희끼리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같이 등 돌려 남자를 향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남자는 살짝 한 번 웃기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남자는 여고생들이 다 먹고 편의점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고생들은 밖으로 나갈 때도 남자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시간은 이제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곧 점장이 교대해주러 올 시간이었다. 정용은 자취방으로 돌아가면서 샌드위치를 먹을 작정이었다. 폐기 시간이 지난 샌드위치는 이미 가방 안에 챙겨둔 터였다. 인터넷도 안 하고 바로 씻고 잘 작정이었다. 그만큼 정용의 몸은 마치 우그러진 캔처럼 어떤 부분은 날카롭고 또 어떤 부분은 납작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정용은 조금 전에, 남자가 테이블 아래로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여고생들의 뒤편에 앉아서 그 행동을 두세 번 반복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이상한 행동이었고, 명백하게 어떤 의도를 가진 손동작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잡아뗀다면? 괜한 사람을 의심한다고 오히려 화를 내고 항의한다면? 또 핸드폰에서 바로 삭제를 한다면? 정용은 혼자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내 정용은 자신의 마음이 실은 교대시간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감으면, 못 본 척하면, 갈등도 딱 그 시급만큼만 찾아왔다가 사라질 것 같았다.

정용은 카운터에서 나와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사진 지워요.”

남자는 무덤덤한 얼굴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무슨…?

“저 다 봤어요. 얼른 지워요. 제가 보는 앞에서.”

정용은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밝은 편의점 조명 아래 남자의 피부는 더 깨끗하고 투명해 보였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들고 있던 핸드폰을 재킷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백팩을 메고 냅킨으로 테이블까지 쓱쓱 문지르고 나더니 뒤돌아 편의점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 정용은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정용은 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용은 남자의 뒤로 다가가 그의 백팩을 세게 잡아당겼다.

“너지, 이 새끼야! 네가 애들도 일부러 불러낸 거지!”

정용의 목소리가 편의점 안을 가득 메웠다.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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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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