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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용과 진만의 대학 동기인 상구는 일찍이 스물여섯 살 되던 해 벤츠 C200 쿠페를 부모 도움 없이 풀 할부로 구입한 진정한 카푸어인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작년 말까지도 계속 그 신세 그대로였다.

“차는 말이야, 돈으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용기로 사는 거지.”

정용과 진만은 가끔 그의 차를 얻어 타고 광역시 외곽까지 드라이브를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구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상구는 그때도 하루 여덟 시간씩 편의점 알바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는 월수입 180만원 중 130만원을 차에 쓰고 있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겨울 파카를 새로 사본 적 없었고, 운동화도 딱 한 켤레만 사봤다고 했다. 만 30세 이하여서 차 보험료만 300만원 가까이 나온다고 했다.

“아니, 꼭 그렇게까지 차를 몰 이유가….”

언젠가 정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상구가 대뜸 이렇게 물어왔다.

“너, 하차감이 뭔지 모르지?”

상구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석 유리창을 내렸다.

“내가 이 차 몰고 편의점 알바 하러 가면 말이야, 사람들이 다 쳐다봐. 아, 쟤는 그냥 경험 삼아서 알바하나 보다, 아, 쟤가 편의점 사장이구나. 다 그런 눈으로 보는 게 느껴진다니까.”

“그래서 변하는 게 뭔데?”

“변하는 거? 그런 건 없지. 그냥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넌 그런 거 모르지?”

정용은 상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감정 따위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만은 조수석에 앉은 채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까닥까닥, 상체를 흔들어댔다. 상구는 사람들이 많은 인도를 지날 때마다 꼭 차창을 내리고 볼륨을 높였다. 정용은 그때마다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런 상구가 자신의 벤츠를 중고차 온라인 매장에 내놓은 것은 지난달 중순의 일이었다. 딜러에게 맡기면 감가가 많이 된다고, 개인 간 직거래로 차를 처분할 작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매물로 내놓은 지 이틀 후, 어쩌면 마지막 드라이브가 될지도 모른다고 정용과 진만을 태우러 왔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 추운 겨울밤이었다. 상구는 평상시와 다르게 음악도 틀지 않고, 천천히 시내 쪽으로 차를 몰았다. 사람들이 있으면 상구가 좋아하는 하차감이라도 느낄 수 있으련만, 코로나 탓인지 연말의 거리는 한산하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정용과 진만은 왜 갑자기 차를 처분하려고 하는지, 상구에게 묻지 않았다. 그건 굳이 묻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일. 상구는 히터도 틀지 않은 채 말없이 운전대만 잡고 있었다.

차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상구가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씨댕이… 이제 좋은 주인 만나겠지….”

상구는 자신의 차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좋은 주인 만나서 고급유도 마음껏 먹고 타이어도 좋은 거로 갈아신고 광택도 내주고….”

상구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정용은 멀거니 상구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진만은 상구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그럼, 그럼. 얘도 이제 좋은 곳으로 가야지’ 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상구가 룸미러로 정용을 보며 물었다.

“정용아… 혹시 만 원 있니?”

정용이 아무 말 없이 상구를 바라보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내가 얘 기름 좀 넣어주고 싶어서. 딱 만 원이면 내일까지 몰 수 있을 거 같은데….”

정용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상구에게 건넸다. 내가 미쳤지. 뭐 한다고 얘를 쫓아 나와서….

하지만 정용은 이내 상구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예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난 말이야, 카푸어란 말이 정말 듣기 좋아. 하우스푸어, 빌딩푸어, 카푸어. 이런 말들 멋있지 않냐? 뭔가 막 의지 같은 게 느껴지는 거 같고. 그런 거 빠지면 우린 그냥 푸어잖아, 푸어.”

상구는 그 말을 하면서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차창 밖으로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제 상구는 그냥 푸어가 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붙지 않아 더 쓸쓸한 푸어.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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