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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도난, 밀매로 산지사방 흩어진 유물은 원위치에 놓일 때 제 모습을 갖는다. 최근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이 <가례집람> 책판(冊版) 9장 등 54장을 논산 돈암서원에 기증했다. 이를 통해 이빨 빠진 책판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됐다. <가례집람>은 주자가 지은 <가례>를 사계 김장생이 조선의 실정에 맞게 수정 보완하여 1599년에 완성해냈다. 책판은 1685년 우암 송시열이 10권 6책으로 판각한 것이다. 임진·병자 양란 와중에 예의 원칙을 다시 세우고 행례에 적합하도록 했고, 더욱이 혼란한 사회현실을 예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예악은 유교국가인 조선을 경영하는 근간이었다. 우리 시대로 보면 사회규범이나 질서가 예라면 악은 물론 예술이다. 사계가 보완한 여러 설은 <국조오례의> <격몽요결> <논어> <소학>은 물론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과 같은 선학의 학설까지 서명과 편목으로 넣었고, 자신의 견해는 ‘우(愚)’ 혹은 ‘안(按)’자를 써서 구별하였다. 특히 권두에 실린 의례용 기물과 도표를 담은 도설(圖說)이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이번 기증 책판에도 관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모자의 일종인 ‘복건도(幅巾圖)’와 손님을 맞을 때 주인이 서야 할 위치를 그린 ‘관례주인영빈입취위도(冠禮主人迎賓入就位圖)’ 등이 포함되어 있다.

책판의 가치는 텍스트의 원형으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문중, 학맥, 서원, 지역, 국가로 연결되는 책판네트워크는 500년 조선을 이끈 지식의 연결망이다. 선비공동체 문화의 중핵인 지식인들은 공론(公論)을 통해 문집과 같은 책을 만들어내면서 집단지성을 형성하였다. 2015년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경상도 지역의 유교책판 6만4225장을 모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이것들은 모두 718종의 서책 간행을 위해 판각한 책판으로 305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것들이다. 여기서 보듯 전통시대 지식의 결정체가 책판인데 요즈음 사진필름이나 컴퓨터 메모리장치의 원조 격이다. 인간의 기억 한계는 기록으로 극복되어 왔고, 양적으로나 속도 면에서 이런 책판이라는 기록수단의 발명으로 정보의 저장과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책판은 또한 새김의 정수이자 그 판하본(版下本)은 붓글씨 쓰기의 결정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와 각수(刻手)가 동원되어 책판의 텍스트를 쓰고 새김질한다. 이러한 조선글씨의 전형은 <가례집람> 책판에도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서예의 총화가 책판이 된다. 사실 새기기는 쓰기의 아버지이고, 키보드 치기로는 할아버지뻘이다. 인류문명사는 기억을 위한 도구 발명의 역사다. 칼-붓-키보드로 진화된 것이 그것이다. 처음 칼로 바위에 사물을 새기면서 문명은 시작되었고, 그다음 종이에 붓으로 글씨를 쓰면서 신화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바뀌었다.

지금은 키보드를 치면서 문자영상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요컨대 칼, 붓, 키보드로 새기고, 쓰고, 치면서 인간의 언어는 층위를 달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야말로 울산의 천전리 반구대, 고령의 양전동 등 선사시대 암각화, 삼국·통일신라의 광개토대왕비·무구정광대탑다리니경, 고려 팔만대장경, 조선의 훈민정음이나 왕조실록, 유교책판은 물론 오늘날 반도체가 증명하듯 인류 문자문명의 중심이다.

집단지성의 결정체인 책판은 활자본과 달리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원본이다. 훼손된다면 500년 지식네트워크 전통이 깨져버린다. 김종규 이사장은 “작다고 생각될지도 모르는 기증으로 문화재를 원위치시키는 일이야말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의 대용(大用)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빨이 빠져 반 죽어 있는 책판이 원위치되면서 무지했던 우리의 본정신까지 돌려내고 있는 것이고, 국격을 높이는 일도 문화국가의 시작과 완성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경상도를 시작으로 제주 충청 전라 강원 경기는 물론 통일시대 북한까지 생각하면 여전히 기증·기탁과 국가차원의 구입을 통해 세계유산이 되기를 기다리는 책판과 현판은 부지기수이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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