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규모라면 신도시 하나는 너끈히 들어가겠다.’ 인천공항에 들어설 때마다 중얼거리곤 한다. 며칠 전 호주에서 귀국하는 친지를 마중하러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1층 입국장과 3층 출국장은 물론이고 지하 주차장에 공항철도역까지 포함하면 실로 엄청난 크기의 실내 공간이다. 거대할 뿐만 아니라 쾌적하고 안전하고 편리하다. 

입국장에 앉아 가까운 미래를 그려보았다. 누군가 기후변화와 같은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유리 돔을 기획하고 있을 것이다. 유리 돔 내부에는 그야말로 조화와 균형의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깨끗한 공기와 적절한 온도는 기본이고, 먹을거리는 최적의 상태에서 재배되고 양식될 것이다. 에너지 시스템 또한 재생과 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인구가 많지 않을 것이므로 자립과 자치의 마을 공동체가 뿌리내릴지도 모른다. 

인천공항에서 미래도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때문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플롯은 단순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최후의 날’에 직면하게 되자 과학자들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압도적 화면, 정교한 스토리 라인, 과학 지식의 적절한 활용, 인류의 미래를 위한 영웅들의 도전과 희생 등등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우주를 배경으로 인류가 새 행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인터스텔라>.

픽션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실제로 지구 행성을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진전하고 있지만 인류가 ‘또 다른 지구’로 이주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전에 인천공항과 같은 ‘유리 돔 도시’가 먼저 생겨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누가 유리 도시에 입주하는가. 또한 지구를 떠날 때 누가 우주선에 탑승하는가. 그리고 새 행성은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가. 몇 년 전 인천공항에서 <인터스텔라>를 떠올리며 붙잡게 된 화두다. 

엊그제 책벌레로 유명한 후배가 “요즘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죠?”라며 신간을 한 권 놓고 갔다. <파란 하늘 빨간 지구>(조천호 지음, 동아시아). 기후변화를 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번역서를 읽고 난 뒤여서 얼른 집어 들었다. 기후변화에 관해 평균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다고 여겨왔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밑줄을 자주 그었다. 무엇보다도 국내에 이런 시야를 가진 기후 전문 필자가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이 앞섰다. 추천사에 나왔듯이 “과학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학자”였다.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을 역임한 대기과학자가 대중들을 위해 쓴 책이지만 그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다. 특히 빅 히스토리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기후와 문명의 관계를 조명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4대 문명의 탄생은 물론이고 프랑스대혁명, 산업혁명도 기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가 등장한 것이나 조선시대의 개막, 영·정조 시기의 문예부흥 역시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문명이 인간 지성의 필연적 결과라고 여기는 것은 오만이다. 인류 문명은 홀로세라는 ‘완전한 기후 조건’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우연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홀로세는 인류가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홀로세에서 ‘인류세’로 진입하고 있다. 인류세란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생태 환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말한다. 현재 인류가 지구에 끼치는 가장 큰 악영향 중 하나가 지구 평균 온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는 특별보고서를 통해 향후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시기를 기준으로 섭씨 1.5도 이하로 낮추자고 결의했다.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이상 올라가면 임계치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인류는 홀로세 기후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폭염, 한파, 해수면 상승, 농경지 상실, 환경 난민, 기후 전쟁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한꺼번에 작동된다. 

지구가 빨개지고 있다. 하지만 지구는 인류에게 관심이 없다. 미래가 우리 인류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속수무책인가? 그렇지 않다. <파란 하늘 빨간 지구>의 저자 조천호 전 원장은 과학계의 경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과학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력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독감 약에 빗댄다. 위치정보와 독감 약이 문제를 100%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우리가 신뢰하는 것처럼 과학계의 충고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반세기 전부터 ‘성장’을 멈추고 ‘지속’을 추구해야 한다고 권고해왔다.  

인천공항에서 상상한 ‘유리 도시’는 이미 곳곳에서 우뚝하다. 하지만 극소수 기득권층을 제외한 대다수가 유리 도시 바깥에 거주한다. 가난하고 힘없고 아픈 대다수 인류가 지구의 역습에 내몰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생태 환경 문제 이전에 정의와 윤리의 문제다. 이대로 가다간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극심해질 것이다. 결국 정치의 문제다. 권력에 눈먼 현실정치부터 혁신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지속을 위한 합의를 이뤄낸다면 지구는 다시 푸르러질 것이다. 우리 안에는 아직 홀로세의 ‘파란 마음’이 있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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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