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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입학식이 따로 없다고요?” 내가 되물었더니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초등학교 들어갈 때 입학식이 없어요.” 내가 재차 캐물었다. “입학식만 없는 거겠지요.” 돌아온 그의 답이 더 놀라웠다. “자기 생일날 학교에 갑니다.” 아이들마다 입학 날짜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뉴질랜드에 갔다가 현지 교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여덟 살이 되던 그해 3월 초, 코흘리개 또래들과 함께 왼쪽 가슴에 흰 손수건을 매달고 줄 맞춰 서 있던 기억이 생생한 내게 뉴질랜드 어린이들의 ‘개별 입학’은 낯설다 못해 불편하기까지 했다. 교민분께 우리나라와 같은 입학식이 왜 없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분도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전체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이쪽 문화가 녹아든 것이라고 넘겨짚을 수밖에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와 시 한 편을 써서 문예지에 발표했다. 제목을 ‘이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로 달았다. 신석정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패러디한 것이다. 신석정이 저 시를 썼을 때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 시인은 어머니와 함께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로 가기를 염원한다. 그가 꿈꾼 먼 나라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향이었다.

나는 패러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창조적 배반을 이뤄내는 경우보다 기존 권위에 기대는 가벼운 아이디어일 때가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낯익은 것을 제시해야 시의 진입장벽이 낮아질 것이라고 판단해 명시의 제목을 빌려왔다. ‘그 먼 나라’를 ‘이 먼 나라’로 바꿀 때 일어나는 형용모순이 고정관념을 흔들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졸시의 일부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입학식이 없는 나라 외에도 여덟 살짜리와 열한 살짜리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나라가 있다. 할머니와 젊은 직장인, 미혼모 여학생이 한집에 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기후 재앙에 대처하라며 등교를 거부하는 여학생을 응원하는 나라들이 있다. ‘먼 나라’는 얼마든지 더 있다. 군대가 없는 나라가 제법 있으며, 손자손녀 세대가 쓰게 하려고 통나무를 잘라 건조시키는 나라도 있다. 전 국민이 헌법을 알아야 한다며 헌법 해설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나라도 있다.

서구의 한 지성은 68혁명이 일어난 해에 “역사상 처음으로 지상의 모든 인간이 공통된 현재를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면 몰라도 우리에게 공통된 현재는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는 것 같다. 공통은커녕 현재는 완강한 경계선을 그으며 분할된다. 나라, 피부색, 종교, 가진 것 등에 따라 현재는 얼마나 다종다양한가. 공통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신석정 시인이 일제 치하에서 꿈꿨던 유토피아는 그야말로 ‘먼 나라’였다. 하지만 내가 뉴질랜드를 비롯해 직간접적으로 만난 ‘이 먼 나라’들은 결코 멀지 않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다. 우리가 불가피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것들을 뛰어넘어 미래를 살고 있다. 당장 입학식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먼 나라’들과 마주하며 느끼는 불편함의 뿌리는 이런 것이다. 우리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가.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공통의 현재’를 만끽하는데도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위축돼 있는지 왜 자각하지 않는 것인가.

며칠 전, 지구 최후의 날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 100초 전’으로 앞당겨졌다는 뉴스가 떴다. 지난해 ‘자정 2분 전’에서 20초가 앞당겨진 것인데, 핵무기 위험과 기후 위기가 주원인이다. 이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면 인류는 파멸한다. 미국 핵과학자회 회장은 “인류가 작은 실수나 더 이상의 지체를 용납할 수 없는 위급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후학자들은 전 세계가 당장 전시체제로 돌입해야 이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우리 ‘이 나라’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현실정치가 기후 대재앙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공통의 현재, 공통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신석정의 시 한 구절을 오마주한다. “어머니, 지금이 다시 촛불을 켤 때입니다. 아이들과 지구의 미래를 위해 촛불, 아니 횃불을 들 때입니다. 다시 이 나라에서부터 말입니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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