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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지펴놓은 군불에 마이클 샌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이 기름을 끼얹었고, 요새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선 이준석씨의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능력주의 비판론은 다음 세 가지 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능력주의는 강력한 전복적 효과를 가진다. 강력한 능력주의 선발 시스템이 없었다면 한국의 고위 공직은 혈연·지연으로 얽힌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차지했을 것이다. 즉 능력주의는 엽관제를 타파하는 효과적인 무기다. 이준석씨가 ‘정치인 자격시험’을 도입하겠다고 한 것도 ‘연륜’을 무기로 삼는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도발이다. 그의 능력주의에는 한국의 연령 서열 문화를 깨부수는 통쾌함이 있다.

둘째, 능력주의는 흔히 구조적 요인에 의해 강제된다. 기업은 능력 있는 사원을 선발하려 하고, 구직자는 더 나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본인의 능력을 어필한다.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은 2000년대 ‘입사시험’에서 ‘스펙’으로 진화했고 최근엔 수시채용이 대세가 되면서 ‘직무 전문성’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기업과 구직자가 놓인 ‘시장경쟁’이라는 맥락이 능력주의를 강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 간 경쟁이나 국가 간 전쟁도 능력주의를 요구한다. 즉 우리가 분석해야 할 대상은 능력주의가 아니라 구조적 경쟁이다. 샌델이 ‘대입 추첨제 도입’이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빗나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능력주의는 대중의 집단적 절망에 의해 강화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양극화’가 화두가 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런데 대중은 어느 당이 집권해도 양극화를 줄이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지위의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지위의 배분이라도 공정하게 해달라! 이를테면 정규직·비정규직 격차가 큰 만큼, SKY·지방대 격차가 큰 만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으로 채용이나 입학 여부를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공정이 ‘시대정신’으로 등극한 것은 사람들이 시험에 중독되었거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 아니다.

특히 ‘일자리 양극화’의 원인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여기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답답함이 잘 드러난다. 첫째로 글로벌화된 일부 기업들의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 둘째로 중국과의 경쟁으로 인한 저부가가치 제조업의 위축, 셋째로 임금 지불능력이 높은 대기업 위주로 노조가 조직되고 이들이 임금 극대화 전략을 편 것, 넷째로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탈취’로 상징되는 기업 간 위계와 불공정. 이 중에서 적어도 셋째와 넷째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협력업체의 기술을 훔쳐 가는 기술 탈취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금제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 액수의 3배가 한도이고, 실제 판결에서는 1.5배 정도가 선고된다. 원청업체를 고소하면 밥줄이 끊기는 하청업체의 입장에서 겨우 1.5배를 받자고 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렵고, 실제로 고소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최근 정보기술(IT)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조 조직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되고 프리랜서적 자기정체성을 가진 IT 개발자들에게 노조가 걸맞은 조직인지 의문이고, 타 산업에서 드러난 노조의 불균등 분포와 임금 전략이 IT 업계에 재현된다면 양극화는 오히려 촉진될 것이다. 고전적 대안인 산별교섭과 연대임금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오스트리아의 ‘노동회의소’처럼 교섭권은 없지만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단위가 이른바 ‘플랫폼노동’ 시대에 걸맞은 보완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노조제일주의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노조 조직률은 1999년 11.9%에서 2019년 12.5%로 20년간 겨우 0.6%포인트 높아졌을 뿐인데 말이다.

능력주의 비판의 미덕은 한 가지다. ‘지위의 격차’를 ‘능력의 격차’로 정당화하는 이들에게 반성적 사유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결국 해법은 ‘지위의 격차’, 즉 결과의 불평등을 줄이는 데에서 나온다. 이 지점에서 진보는 실패했고, 여기서 공정 열풍과 이준석 신드롬이 싹튼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능력주의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진보를 무덤으로 재촉할 뿐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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