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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인들은 세대마다 독특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6·25를 겪은 세대는 ‘빨갱이’에 대한 공포심을, 독재와 맞선 세대는 반민주세력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청년세대가 공유하는 가장 큰 공포심은 중국화(化)에 대한 공포와 인구구조에 대한 공포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관찰해 보면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동북공정, 미세먼지, 사드, 김치·한복 논란 등을 거치며 계속 높아졌고 이젠 보수와 진보, 청년과 장년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이 되었다. 그런데 청년층의 혐중은 ‘체제 우월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국은 정권 교체도 여러 번 했고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고 언론 자유도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반면, 중국은 유튜브도 못 보고 ‘미투’가 검열 대상이 되는 일당독재 체제이고 일본은 자민당이 사실상 권력을 독점해온 ‘유사민주주의’ 체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반일 감정이 높아도 일본이 한국의 ‘체제’를 위협한다고 보이지는 않는 반면, 중국은 한국의 우월한 ‘체제’를 타락시킬 위협으로 보인다. 그 궁극적인 증거는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 즉 북한 정권과 한패라는 것이다.

진보적 역사개설서인 <한국 현대사>(강만길)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박세길)에 한국전쟁은 ‘어쩌다’ 일어난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각각 2006년과 2016년에 나온 개정판에서도 그러하다. 1990년대 이후 실증 연구를 통해 밝혀진 김일성의 주도적 역할, 즉 스탈린과 모택동을 집요하게 설득하여 허락을 받아내고 무기를 얻어내는 등의 과정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실제로 일부 진보적 지식인이나 정치인들과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해 대화해 보면 낡은 남침유도설로 얼버무리거나 이것저것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청년들은 무엇보다 자생적 반공주의자다.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적화통일이 되었을 것이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성취는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2000년대 인천 월미도 공원에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했던 진보적 시민단체들을 ‘왜 진보라고 불러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축하한 발언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이 대외적인 공포라면 저출산은 내부적인 공포다. 청년 세대의 엘리트층은 이미 한국 사회에 미래가 없다고 본다. 한국의 출산율이 ‘초’저출산의 기준인 1.3명 이하로 떨어진 것이 2002년부터니 거의 20년이 되었다. 국민연금기금은 2050년대 중반에 고갈될 예정이다. 기금이 고갈되면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전환하자는, 즉 청장년층이 노년층의 연금을 내주는 식으로 변경하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부양비 예측치를 보면 지금은 100명이 40명을 부양하지만 그때의 인구구조로는 100명이 100명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금보험료를 소득세보다 많이 내야 할 지경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인구구조를 지탱하는 데 성공한 사회는 없다. 같은 이유로 건강보험도 지속 불가능할 것이며, 경제성장률 자체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단연 돋보인 공약은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나경원 후보의 ‘신혼부부에게 1억2000만원씩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나경영’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나 후보가 앞으로 대선 당내 경선에서도 이 공약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온갖 저출산 대책이 효과가 없었으니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성취해온 근간을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보수’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공약이기도 하다. 만일 대선에서 이재명과 나경원이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청년층은 나경원을 지지할 이유가 있다.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제도와 병행하면 재정이 오히려 더 빨리 고갈될 우려가 있는 반면, 강력한 선별적 지원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는 데 성공한다면 인구구조의 보릿고개를 견딜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당이 한두 가지 변화로 청년층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86세대와 청년층 사이의 간극은 일종의 사상적 차이인데, 자고로 나이 50 이후에 사고방식을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체제’ 문제를 ‘민족’ 문제로 치환하고, 정문으로 ‘연대’(solidarity)를 들여오는 대신 옆문으로 ‘복지’를 들여온 86세대 민주당 정치인들의 세계관이 청년들의 거대한 반문에 직면한 셈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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