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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는 촛불의 후계자야. 일본을 봐. 아베의 측근이 기자를 성폭행했는데, 가해자는 기소도 안되고 오히려 피해자가 놀림감이 되잖아. 중국을 봐. ‘미투’가 아예 인터넷 검열 대상이고, 누리꾼들이 미토(米兎)라고 바꿔 쓰니까 이것마저 검열한다고. 근데 대한민국에서는 미투가 대권주자와 노벨 문학상 후보도 넘어뜨리잖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답지. 여성은 이제야 국민이 되어가는 도중인 거고. 

그 와중에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으로 꽂히네? 민주당 사람들이 나한테까지 왜 그러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때 갤럽 조사에서 40% 밑으로 내려갔거든. 그래서 내가 지지율이 더 낮아질 거라고 했지. 지금은 20%밖에 안되던데. 

첫째는 경제적 문제, 젊은 남자들은 여전히 결혼할 때 집을 마련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여기거든. 여성할당제로 여자들한테 밀리고 집값폭등으로 기성세대한테 뜯긴다고 생각하니까 민감할 수밖에 없지. 며칠 전 조사에서 “현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에 ‘잘하고 있다’가 20대 남성은 15%밖에 안돼. 모든 연령별·지역별·성별 집단 중에서 꼴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둘째는 사법적 문제. 여자들한테 소심한 남자들이나 예의를 갖추려는 남자들도 적지 않아. 이들은 자기가 누군가를 성추행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성추행했다가 미투 당할 걱정보다는, 성추행범으로 잘못 몰려서 사법처리 당하는 게 더 공포스러워. 진짜라니까. 초식남과 덕후가, 날라리와 마초와 연대했다는 게 가장 주목할 지점이야. 

요새 여혐과 남혐의 시작은 20대가 아니라 10대라고 봐야 해. 특히 남중-남고(-심지어 공대!) 테크트리를 탄 남자들은 여성을 일본 포르노를 통해 접하는데, 일본 포르노의 특징이 여자들이 강간당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처럼 연기하거든. 이걸 보고 남자애들은 여성이 성적 도구일 뿐만 아니라 ‘위선적 존재’라고 느끼게 돼. 따지고 보면 여자들도 남자의 생리작용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 제발 성교육 좀 제대로, 적나라하게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남중-여중, 남고-여고 이런 거 좀 합치면 안될까? 서로를 동료로서 접할 기회를 많이 갖고 같이 일하고 싸우고 부대껴야 할 텐데. 

주변의 586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좀 웃기더라고. 자기들이 믿었던 사상도 당시 기성세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거든. 민족의 정통성이 북에 있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당시 기성세대는 뒷목을 잡고 쓰러졌지. 미국문화원에 폭탄을 설치하고 막 그랬잖아. 서태지가 데뷔하자 학생운동 저널에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알아? “마약 권하는 사회가 권하는 음악, 서태지.” 

일관된 사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당연히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586이 젊을 때 딱 그랬어. 페미니즘도 그래서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야. 나는 우리집 애들한테 한번도 “남자가…” “여자가…”라는 말을 안 해 봤거든. 근데 요새 딸한테만 ‘예쁘다’고 말하는 게 정당한 건지 생각해보게 되더라니까. 이것도 따지고 보면 고정적 성역할의 투영이잖아. 불편해진 거지. 

그렇게 일관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다 보면, 시월드는 물론 여혐이고,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죄로 모는 것도 여혐이고, 노동시장에서 성차별도 여혐이고, 여성의 섹스어필도 여혐이지. 가족관계, 사법체계, 노동시장, 꾸밈과 치장의 문화 전체가 남성지배-여성혐오적 시스템이지. 난 이런 일관적 비판의식을 버리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라는 거야. 그래야 뭔가 바뀌어. 586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꿨다면 그건 젊었을 때 열심히 우겼기 때문이거든. 

물론 그 과정에서 운동이 부러지겠지. 난 586의 사상이 어디서 어떻게 부러졌는지가 중요했던 것처럼, 페미니즘도 어디서 어떻게 부러질지가 중요하다고 봐. 대략 페미니즘의 탈근대적 인식론이 근대의 기본 가치와 부딪치는 어느 지점에서 부러지지 않을까 싶어. 예를 들면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고인 권리주장은 근대의 핵심적인 가치거든. 흔히 ‘법 앞의 평등’이라고 말하지. 근대 국가질서에서는 ‘법 앞의 평등’이 ‘실질적 평등’보다 중요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이미지들은 여성혐오잖아?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만만찮은 근대적 가치와 교집합을 가지기도 하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난감할 거야. 사회운동은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거든. 하지만 근대 국가기구는 어떤 상태가 ‘실질적 평등’인지 몰라. ‘법 앞의 평등’은 명쾌한데, ‘실질적 평등’은 모호하잖아. 설마 무조건 반반은 아니겠지? 그럼 당장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얘기를 들을 거고. 

‘실질적 평등’의 법정은 이 세상에 없어. ‘함께’ 만들어가는 수밖에.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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