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50년 2월9일 미국 공화당 여성당원대회에서 매카시가 서류뭉치를 꺼내 들고 “국무부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 205인 명단이 여기 있다”고 소리쳤다. 매카시즘 시작일부터 70주년이 되기 딱 나흘 전인 지난 5일, 그 광풍에 영화로 맞섰던 커크 더글러스가 103세로 숨졌다. 

<스파르타쿠스>는 더글러스가 제작과 주연을 맡아 매카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인들을 과감히 기용한 영화다. 명장면은 노예 반란을 진압한 귀족 크라수스가 포로들에게 “스파르타쿠스가 누군지 지목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자 저마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라며 일어서는 대목이다. 역사와 다른 시나리오를 쓴 돌턴 트럼보는 “할리우드에서 매카시 광풍에 반대하는 이들의 연대감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매카시즘을 걷어낸 최고 공로자로는 그 허구성을 폭로한 에드워드 머로 CBS 기자와 커크 더글러스를 꼽고 싶다.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 사라졌고 유럽처럼 공산당까지 허용해 당원이 5000명쯤 된다.

북한과 대치하는 한 남한이 공산당을 받아들일 조짐은 없는데도, 남북교류와 개혁을 말하면 ‘좌빨’로 낙인찍는 한국판 매카시즘의 확산은 심각한 문제다. 광화문에서는 토요일마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무릅쓰고 집회가 열려 “주사파가 정부를 장악했다”며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고 선동한다. 지난 8일에는 초등학생이 “전광훈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나라가 공산화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연설했다.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가 들어오면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며 민주적 절차를 거쳐 통과한 법도 비난한다. 

매카시즘이 먹히는 이유는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공포마케팅은 원래 보험산업과 의약품산업에서 악용하는 수법이어서 관련 광고는 까다롭게 규제된다. 그런 공포마케팅이 경제와 정치를 넘어 언론에도 넘실대는 곳이 한국 사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되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도 공포마케팅이다. 

선거를 앞두고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보수언론은 공포심과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방역참사’ ‘우왕좌왕’ 등으로 수없이 정부를 비난했다. ‘메르스 때 당하고 초기대응 또 실패…답안 보고도 시험 망친 셈’(조선일보), “천안 간다더니 우리가 호구냐”(한국경제) 등은 극히 일부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일본 크루즈선 봉쇄를 칭찬했다가 누리꾼들의 ‘성지 글’이 됐다. ‘보수세력이 선거에 이겨야 한다’는 정파성에 매몰돼 “4·15는 ‘오기 경제’ 심판의 날”(문화일보)처럼 선거법을 우습게 만드는 보도가 쏟아진다. 

외국인 혐오나 공포증을 부추기는 보도도 많다. 조선·문화일보는 ‘우한 폐렴’이란 병명을 고집스레 쓴다. 정부가 중국에 굴복한 거라서 바꿀 수 없다나. 병명에 지역명을 붙이면 주민들이 억울하지 않을까? 1차대전 와중에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미국인이 첫 환자였는데 그 이름이 붙었다. 세계에서 수천만명이 죽었는데 우리나라도 ‘무오년 독감’이라 해서 14만명이 희생됐다. 세계보건기구가 뒤늦게 코로나19로 명명한 것은 우리식 작명의 지혜를 터득한 건가?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는 인구 3분의 1이 죽었는데, 공포에 질린 이들이 성당에 모여 기도에 열중하는 바람에 전염병이 더 빨리 확산되기도 했다. 페스트는 중세 암흑기 봉건제도와 교회의 속박 속에서 인본주의와 자유가 위축됐을 때 기승을 부렸다. 스페인독감도 각국이 전쟁에 휩쓸려 국민을 돌볼 수 없을 때 크게 번졌다. 

통제사회는 질병을 잘 다스릴 것 같지만 정반대다. 인권 존중과 언론 자유가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메르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스와 코로나19가 배금주의까지 만연한 중국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한국에서도 비교하긴 이르지만 초기 대응만 놓고 보면,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 정보 유통이 잘된 노무현·문재인 정권이 사스와 코로나19를 잘 관리했고, 박근혜 정권 때 메르스 희생자가 많았다. 

우리 사회에는 공포심을 조장해 이익을 편취하는 세력이 너무 많다. 봉준호 감독 등 수많은 영화인, 예술인, 작가, 언론인은 전 정권에서 ‘좌빨’로 분류돼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제 그들의 책무는 지구상에서 한국에만 출몰하는, 70년 된 ‘매카시즘의 좀비들’을 영원히 관 속에 집어넣는 일이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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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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