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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승리에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선한 자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영국 보수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가 한 말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들을 모두 취재했다. 각자 ‘선한 자’라고 생각하여 두 곳에 모인 이들은 ‘악의 승리’가 구현될까 두려워하는 점에서 같다. 선악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으니까 양쪽이 이해되지만, 내 경험으로는 ‘악을 쓰는 쪽’이 상대적으로 선과 거리가 멀다. 

여당은 3일 광화문 집회를 동원된 것으로 비판했지만 스스로 나온 이들도 많았다. 군복 입은 걸로 미루어 병역의무를 다한 ‘애국자’들이 많은 듯했고, “어떻게 발전시킨 나라인데 이 모양이 됐냐”고 나에게 동의를 구하며 손팻말을 나눠주는 표정에는 ‘산업화 역군’이라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런데 이들 집회에서는 보수의 덕목이기도 한 절제와 겸손, 성실과 신중함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악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경찰에게 폭력 등을 행사해 46명이 연행됐다. 국정농단을 반성하는 진정한 보수는 눈에 띄지 않았고 애국과 민족주의도 뒤틀려 있는 듯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까지 배낭에 꽂은 한 노인은 지하철에서 전단을 받지 않으려는 청년에게 욕을 퍼부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땅의 보수’는 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김구, 함석헌, 장준하, 김준엽, 김수영, 문익환, 리영희 같은 ‘진정한 보수’를 좌파로 매도할까? 이들은 왜 황석영, 김훈, 유시민 같은 자유주의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할까? 광화문 집회를 이끈 자들이 이들을 대체한 것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유신 시절 경기고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았고 군 미필에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공안검사로 살아왔다. 그는 “대통령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하는가 하면 “흑자 보던 한전이 탈원전 하자마자 적자로 돌아섰다”는 가짜뉴스로 선동을 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조폭들끼리 서초동 단합대회를 해본들 마지막 발악일 뿐”이라고 집회 군중을 욕보였다. 집회를 주최한 전광훈 한기총 회장이 배설한 욕과 혐오발언은 옮기기도 창피하다. 

‘보수’는 이런 자들이 이끄는 극우에 희망을 거는가? 한국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극우와 어울릴 게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내세워 문재인 정권에 실망한 보수세력을 규합해야 한다. 버크도 “보수는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서초동 집회 군중을 3만5000~5만명이라고 깎아내렸는데 그러면 3일 광화문 집회도 서초동보다 좀 많다고 말해야 옳다. 남의 집회를 폄하할 게 아니라 집회문화를 배우고 보수의 품격을 갖춰야 건전한 보수와 진보가 양립하는 정치 발전이 가능하다. 

5일 서초동 집회에서  연행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집회가 끝난 거리는 청소원들도 놀랄 만큼 깨끗했다. 문화제 같은 집회라면 진보든 보수든 매주 열면 좋겠다. 꼭 규모가 클 필요도 없다. 답답한 대의정치의 한계를 벗어난 직접정치의 한 형태로 ‘거리의 정치’가 자리 잡을 수도 있으리라. 이런 집회문화는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때 세계 언론이 주목한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다. 

험한 말이 오가는 분위기는 ‘진보진영’ 안에서도 퍼지고 있다. 조국 장관에게 도덕적·법적 책임을 묻는 일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민주화 동지를 맹비난한 운동가와 논객도 있다. 그러면 동지를 ‘권력 추종자’쯤으로, 군중 운집을 ‘파시즘’으로 모독하는 언어폭력은 도덕적인가? 장관이기 전에 한 가족의 인권이 검찰권력에 유린당하는 걸 항의하는 게 부도덕한가? 논리로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감정의 영역에서는 진보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품격을 갖추는 쪽이 진영 내 불필요한 싸움을 극복하고 중도층을 흡수해 집권세력이 된다. 

사실 한국 사회, 이른바 ‘진보진영’은 사상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언젠가 분화할 운명이었다. ‘진보진영’에는 유럽이라면 우파로 분류될 자유주의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수구독재세력과 맞서 싸우면서 ‘동고동락’했다. 한국에서 ‘좌파’는 수구세력이 입지를 넓히려고 나머지를 한쪽으로 밀어붙이는 멸칭일 뿐이다. ‘강남좌파’나 ‘입진보’는 수구세력이 즐겨 써먹는 ‘언어의 덫’이다. 

광화문 집회에서 김문수 전 지사는 “빨갱이 기생충을 청와대에서 끌어내자”는 혐오발언까지 했다. 황교안, 홍준표, 나경원, 오세훈 등은 수구세력의 눈에 들려고 막말 수위 경쟁을 벌인다. ‘증오의 정치’는 기존 지지자를 규합하는 데 효과가 있다. 그런데 그 효과는 그 정치세력이나 정당의 담을 넘지 못한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공천 경선에는 유리하지만 품격 없는 언행은 본선에서 부메랑이 되어 발목을 잡는다. 선거 승패는 ‘막말 정국’에서 세력이 커진 무당파가 쥐고 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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