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이던 린든 존슨은 암살당한 존 F 케네디의 후광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선거 기간 중 존슨은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당선되면 베트남에서 전쟁을 크게 벌일 것이라고 공세를 퍼부어서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존슨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많은 전사자를 내고 엄청난 돈을 퍼부었음에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존슨은 지독한 마이크로 관리자(micro manager), 즉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대통령이었다. 그는 북 베트남에 대한 폭격지점과 공습 규모를 직접 정하는 등 합동참모본부의 영역인 작전에도 일일이 간여했다. 합참 지휘부부터 현지 중대장까지 백악관을 욕했으니, 그 전쟁이 잘 될 수가 없었다. 존슨은 재선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이 실패한 대통령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1968년 대선에서 당선된 리처드 닉슨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고 있던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닉슨은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를 기용해서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켰다. 하지만 닉슨은 언론을 기피하고 남을 의심하는 피해망상 증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밥 할데먼, 존 얼릭먼 등 캘리포니아 출신 핵심 측근들만 신뢰했다. 자연히 백악관에는 ‘인(人)의 장막’이 생겼고, 공작정치의 음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결과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이었다.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인 워터게이트 빌딩에 침입한 괴한들의 배후가 백악관이고, 백악관이 사건 은폐를 지시했음이 밝혀지자 닉슨에 대한 탄핵 절차가 개시됐고 닉슨은 사임해야만 했다.

닉슨의 실패에 진저리 친 미국 유권자들은 워싱턴 정치와 무관한 지미 카터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카터는 검증된 사람들을 각료로 기용했고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안보보좌관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카터는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전력이 있는 시어도어 소렌슨을 CIA 국장으로, 그리고 국제관계에 문외한인 흑인민권운동가 앤드루 영을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파격적 인사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려 했겠지만 이것이 문제가 됐다.

소렌슨은 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사퇴했고, 어렵게 대사가 된 앤드루 영은 구설수나 일으키다가 사임해서 카터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해밀턴 조던 비서실장 등 카터를 따라서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아 출신 참모들은 워싱턴 정치에 미숙했고, 코카인 흡입 의혹 등 쓸데없는 말썽을 일으켰다. 카터 자신도 아마추어같이 말하고 행동해서 대통령직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핵물리학을 공부한 해군 장교 출신답게 매사에 너무 꼼꼼한 카터는 전형적인 마이크로 관리자였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혼자 짊어지고 고민한 그는 인플레이션과 유류파동 등 경제난국을 풀지 못했고 대외정책에도 실패했다. 카터는 1980년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했다. 카터 행정부 4년의 실패가 공화당 12년 치세를 불러 온 셈이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출처: AP연합)


1960~1970년대 미국 대통령의 ‘실패 스토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닉슨의 ‘캘리포니아 사단’과 카터의 ‘조지아 마피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특정한 인맥이 대통령 주위에 들어서서 장막을 치는 정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 주변의 몇몇 측근이 정권의 ‘실세’라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매우 불길하다. 워터게이트 같은 음습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매사를 자기가 챙기고 결정하려는 만기친람형 대통령은 100% 실패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은 유능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기용하고, 이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참모와 각료는 대통령이 지시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참모와 각료는 함께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하라고 있는 것이다. 닉슨은 또한 언론을 회피하고 언론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는 대통령의 취약함을 잘 보여주었다.

존슨, 닉슨, 그리고 카터가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임명한 장관들은 대부분 괜찮은 인물들이었다. 문제는 대통령 자신과 백악관 참모에게 있었다. 우리의 경우는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도 그렇지만 총리와 내각은 아예 존재감이 없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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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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