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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을 만나지 않은 채로 명절이 지나갔다. 연휴 내내 미세 먼지가 많았어도 춥지는 않았다. 나의 외할머니 이존자씨라면 충청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가. 날이 푹햐.” 존자씨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푹하다’라는 말이 좋았다. 겨울날이 퍽 따뜻할 때 푹하다고 소리내어 말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 말을 얼굴 보고 들을 수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다 같이 모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존자씨는 살다 살다 이런 세상은 처음이라며 탄식했다. “입을 아주 틀어막는 세상이자녀.” 그게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임을 한발 늦게 알아듣고 나는 막 웃었다. “울애기, 많이 웃어.” 그는 아직도 나를 ‘아가’ 혹은 ‘울애기’라고 부른다. 세상은 세상이고 울애기는 참말로 기특하다고,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1940년대에 태어나 살아가는 그의 눈에 2020년대가 어떻게 보일지 헤아렸다.

내가 글쓰기 교사로 근무하는 도시형 대안학교에서는 십대들에게 조부모 생애사 집필 작업을 과제로 준다. 외조부모나 친조부모, 혹은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아이와 가까웠던 할머니, 할아버지 중 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도록 지도한다. 일흔 해 넘게 살아온 사람들의 우여곡절을 들으며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한다. 같은 시대 안에서도 개인의 기질이나 운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인생을 사는지 배운다. 누구든 시대의 풍요와 결핍으로부터 숨 쉴 때마다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 또한 배운다. 노인의 생애를 듣고 글로 옮기는 것은 긴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은 한 학기 내내 이 글쓰기에 매진한다. 교사는 인터뷰의 기술과 예절을 가르치며 생애사 원고를 함께 퇴고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잘해내고 싶은 집필 작업이다. 지난 100년치의 시선을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시선은 할머니를 키운 사람이 태어난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아주 구체적인 얼굴과 연결하게 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그런 시선을 지닌 책이다. 아이슬란드의 작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앞으로 100년에 걸쳐 지구상에 있는 물의 성질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이야기한다. 빙하가 녹아 사라지며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온이 높아지며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고, 바닷물은 인류가 한 번도 겪지 못한 수준으로 산성화될 것을 예고한다. 많은 기후학자들이 진작부터 해온 예고다. 다가올 ‘어마무시한’ 변화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우리의 모든 과거 경험을 뛰어넘을 변화라서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언어를 한참 초과하는 현상일 것이다.

빙하 녹고 자연재해 잦아지고
‘파괴된 자연’ 물려받은 아이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기후 논의 없이는 미래도 없다

마그나손은 힘주어 말한다. 오늘 태어난 아이가 할머니가 되는 동안 그 모든 변화가 일어난다고. 인류가 여섯 번째 대멸종에 가까워져가는 이 시절에 그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수집한다. 자신과 상관있는 과거의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들이 지구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살핀다. 그럼으로써 자신과 상관있는 미래의 인간들이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하는지 탐구한다. 과거에서 건져올린 애틋한 사랑을 미래로 보내는 방식의 글쓰기다.

책에서 마그나손은 자신의 아이에게 묻는다. 아직 살아 계신 증조할머니의 나이와, 아이가 증조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나이와, 세월이 흘러 아이의 증손녀 역시 증조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나이를. 그럼 아이는 종이에 숫자를 적어가며 계산한다. 2008년에 태어난 자신이 아흔네 살이 되고, 자신의 증손녀가 다시 아흔네 살이 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나이를 더한다.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덧셈의 장면이다. 덧셈을 마친 아이는 대략 250년이라고 대답한다. 마그나손은 아이에게 말한다.

“그만큼이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야. 이 시간에 걸친 사람들을 너는 알고 있어. 너의 맨손으로 250년을 만질 수 있고, 할머니가 가르친 것을 손녀에게 가르칠 수도 있어. 너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이야.”

이런 이야기를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네가 연결되어 있는 시간은 250년이나 될 거라는 이야기. 하지만 지금과 똑같이 살아서는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지구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기후 파업을 한다. 자신들의 미래 없음에 대해 말한다. 이전 세대가 살아놓은 결과를 온몸으로 맞이할 다음 세대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940년대에 태어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얼굴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쓴다.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사랑하게 될 미래의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다. 나는 그들 생의 이야기를 소중히 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장혜영 의원이 창작자 시절에 썼던 노래 제목처럼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그 미래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공부한다. 기후에 대한 논의 없이는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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