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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은 정부 브랜드로 전임 정부를 차별화하지 않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이어달리기라는 신임 통일부 장관의 청문회 발언이 흥미롭다.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한주적론을 공약으로 내걸어서 대북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탓이다. 권영세 장관의 이런 입장이 대통령의 의사인지 분명하지도 않고 남북관계를 둘러싼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역시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언술을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왕에 장관이 된 그에 대한 기대를 굳이 냉소로 덧칠할 이유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어달리기론이 실행되기 위한 몇 가지 전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이어달리겠다는 의지를 전달할 신호보내기 즉 시그널링의 대상 청중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선거 기간 윤석열 후보가 내건 북한주적론과 선제타격론의 청중은 국내 유권자였을 것이다. 선거라는 특수 상황에서 표를 얻기 위한 계산된 일탈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북한주적론과 선제타격론을 자신에 대한 정책 전환으로 간주한 북한의 반발은 분명했다. 지난 4월25일 열병식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폐기한 주적론을 되살릴 수도 있고 또한 전술핵 선제 사용과 관련한 핵 독트린 변화도 있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북한 주적론과 선제타격론이라는 명료한 표현의 성과는 컸으나 지불 청구서는 남아 있는 셈이다. 따라서 대통령 당선이라는 소기의 성과가 이루어진 마당이니 국내 유권자, 국제사회 그리고 북한 당국 각각을 상대로 이어달리기를 하겠다는 교정적 시그널을 보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어떤 신호를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새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결연한 반대 의지를 보이는 데 무게 중심을 둬 왔다. 이런 유의 시그널을 이어달리기와 병행하는 것에는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한때 박근혜 정부는 국내 청중비용을 높여 퇴로를 스스로 막는 자승자박(tying hands) 전략을 선택했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대표적 자승자박의 시그널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런 시그널을 무시하고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대북 억지의 시그널링이 실패한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집권 직후 베를린 선언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했다. 그것이 2018년 평화 프로세스로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드레스덴이 아니라 베를린을 선택한 것 자체가 하나의 성공한 시그널링이었던 것이다. 텍스트 너머의 다양한 신호를 동원하는 것은 시그널링의 중요한 기법이라는 점에서 권영세 장관이 청문회에 이어 어떤 이어달리기 2탄을 만들어내는가에 주목하게 된다.

세 번째는 시그널의 오인식에 대한 고려이다.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시그널은 의도하지 않은 많은 해석을 낳게 마련이다. 사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경고를 위해 강행된 사드 배치는 의도하지 않은 시그널이 되어 제3자 즉 중국을 행위자로 끌어들였고 한동안 한국 외교를 어렵게 만들었다. 누구에게 어떤 의도를 전달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되 그것이 제3자의 오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공식·비공식 장치를 동원하는 것은 외교의 기술이다. 이어달리기가 한·미동맹에 오인식되지 않게 하는 것, 중국을 북한의 동맹으로 몰아붙이지 않게 하는 것 등 정교한 시그널링이 기대된다.

네 번째는 정책 담당 부서 간 조정이다. 외교 정책의 경우 각 부처의 정책 조합이 외교로 이어지는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시스템에 의한 외교라고 하지만 그런 시스템은 사실상 외교의 본성과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더 많다. 주요한 외교·국방·통일 이슈를 다룰 때나 위기 시는 결국 각 부처들의 이해관계 및 정책적 요구나 해당 정책 담당자들의 이념 성향의 차이 등을 조절하는 정책 바기닝과 조정 과정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청와대 안보실 담당자들의 MB식 정책 이념과 통일부 장관의 이어달리기 발언이 일치하는지, 국방부의 국방비 증액을 위한 정책 조합과 이어달리기가 충돌하지는 않는지, 나아가 정보 당국의 휴민트가 그릇된 애국주의를 부추겨 이어달리기를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는지 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해소해야 한다.

선거 과정의 레토릭이 가져올 후폭풍을 교정할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국익을 두고 살벌한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외교·안보·통일의 영역에서 허니문 기간이 주어질 거라는 기대는 망상이다. 북한의 오미크론 사태와 한·미 정상회담이 몰려 있는 5월 정국에서 이어달리기론이 또다시 지방선거용 물타기 시그널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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