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되면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언론이 관심을 두는 것은 한 해 국정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각 부처가 보고하는 사업과 대통령의 평가 등을 통해 주요 국정과제 윤곽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 중인 새해 업무보고는 이런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각 부처의 보고들을 두고, 재탕·삼탕, 허황, 말장난 등 부정적 평가만 난무하고 있다.

당초 청와대는 이번 업무보고에 한껏 의미를 부여했었다. 업무 성격이 비슷한 부처들을 모아놓은 기계적 합동보고가 관행이었지만, 이번에는 중요 주제를 놓고 관련 있는 부처들이 함께 보고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분야별 보고’에서 ‘이슈별 보고’로의 변화다. 청와대는 유관기관 간 중복보고 여지를 없애고 연관성 있는 국정과제 집행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5번 중 3차례 업무보고가 완료된 20일 현시점에서 세간의 평가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부정적’이다. 각 부처 보고 내용은 이미 추진 중인 과제를 변형한 것들이거나, 현실성이 담보되지 않은 ‘말의 성찬’이 주를 이뤘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활성화’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등의 지난 13일 업무보고를 보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경제정책 방향으로 공공부문 혁신 및 노동시장 개혁, 임대산업 육성,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개선,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 등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말 국무회의나,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구조개혁을 되풀이한 수준이었다.

통일부·외교부·국방부·국가보훈처의 19일 업무보고는 더 한심했다. 현실을 무시하거나, 실행방법이 없는 구호만 난무해 ‘홍보전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통일부가 보고한 ‘한반도 종단 및 대륙철도 시범운행’ 방안은 사소한 교류협력도 막아놓은 5·24 조치를 스스로 위반하는 내용이었다.

외교부는 기존 정책에 통일이라는 단어만 갖다 붙였다. 외교장관이 매년 참석하는 다보스포럼을 두고 ‘국제사회에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장했으며, 2013년 출범한 중견국 협력기구 ‘믹타(MIKTA)’를 놓고는 ‘통일네트워크 확충’을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창조국방’이라는 개념을 내놓고 ‘아이언맨’ 같은 스마트 솔저, 레이저빔, 고출력 마이크로웨이브탄 등 신무기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예산·기술 문제 등은 쏙 빼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행정자치부, 법무부, 국민안전처, 인사혁신처, 국민권익위원회, 법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8개 부처로부터 정부혁신을 주제로 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모두발언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대통령은 15일 미래창조과학부 등 5개 부처 업무보고에서 “혁신 기회를 다 놓치고 힘 다 빠졌을 때, 그때부터 부산을 떨어봤자 소용이 없다”고 했다. 집권 3년차가 국정성과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인식은 이견이 없다. 그런데 3년차 문을 여는 새해 업무보고가 이렇게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금언에 대입해 본다면 ‘3년차’의 앞날이 우려스럽다.


이용욱 정치부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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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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