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보편적 이론도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를 되짚는 것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과거에서 참고해 취할 덕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 한명기가 최근 평전(<최명길 평전>, 보리출판사)을 통해 ‘주화파 최명길’을 불러낸 뜻에 공감한다. 병자호란 당시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 협상을 주도한 외교관, 후손들에게 ‘매국노의 후예’라는 굴레가 씌워질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었던 최명길.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 한반도를 엄습하는 이때 명·청 교체기 조선의 형세와 그 난국을 타개하고자 고군분투한 최명길을 떠올린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최명길은 단순히 실리만을 추구하여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외교관이 아니었다. 그는 인조반정 일등 공신 10명 중 한 사람으로 시대에 순응하며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느 공신의 길을 마다하고 내정개혁을 주장하며 실용 노선의 외교안보 전략가를 자임했다. 그가 명·청 교체기 대륙의 정세를 조망하면서 외교정책을 준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광해군 시절 함경도 관찰사 등으로 변방을 지키던 장인(장만)과 그 부하 무장들로부터 외교·국방과 관련한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양명학을 공부해 지배층의 이념인 주자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도 유연한 외교관(觀)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 최명길이 ‘주전 95 대 주화 5’의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론 지형에서도 화친을 주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최명길에게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파를 뛰어넘는 태도이다. 그는 반정 직후 광해군의 총신이었던 평안도관찰사 박엽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박엽을 처단하려는 공신 김류에게 “박엽은 후금(청)으로부터의 환난을 대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며 “그를 죽이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장성을 허무는 일과 같다”고 설파했다. 박엽은 그 성정이 잔인해 세평이 좋지 않았음에도 청나라를 상대하는 데는 그만한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살려두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명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두 차례의 호란을 통해 그의 우려는 고스란히 입증됐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무인지경을 달리듯 5일 만에 서울에 당도했다. 

최명길이 좌절당하는 과정도 너무나 낯익다. 인조는 반정 1년 후 벌어진 이괄의 난으로 정권의 안위를 크게 위협받은 후부터 오로지 국내 정치에 매달렸다. 변방을 지킬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후금 정벌’을 공언했다. 반정으로 잡은 정권의 정통성을 명나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것이었다. 변방의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기찰을 강화하는 바람에 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집권층인 서인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청나라와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맞서 싸울 힘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정신승리’를 외쳤다. 그리고 척화파들은 청에 항복한 뒤에는 최명길이 만들어 놓은 문으로 나가 목숨을 부지했으면서 그를 만고의 역적, 매국노라고 매도했다. 

한명기 교수는 최명길을 ‘선택적 원칙주의자’라고 정의했지만 나는 그를 ‘경계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계인은 누구 편에도 서지 않는다. 한쪽에 서면 대립적인 두 당사자를 동시에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자 최진석은 “경계에 서는 것은 한쪽에 수동적으로 갇히는 게 아니라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 쇠락해가는 명과 떠오르는 청을 냉철히 관찰하면서 선택적으로 시의적절하게 대응해 나간 최명길이야말로 진정한 ‘경계인’이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썩 미덥지 못하다. ‘경계’에 서고자 하는 의욕은 느껴지지만 그 전략을 실천할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면서도 전 정권에서 중용된 관료들을 내치고 있다. 균형자 역할도, 촉진자 역할도 다 좋다. 하지만 실천할 역량은 갖추지 못하면서 말로만 이상론을 편다면 또 다른 명분론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파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 이외엔 다른 길이 없는 양 부르짖은 척화대신들처럼 한·미동맹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신봉하고 있다. 한국이 이미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끼여 있는데도(양국 간 거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애써 이를 부정하고 있다. 명분론이 외교안보 담론을 덮는 한 냉철하고 유연한 사고는 어렵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한국이 과거 명·청 교체기의 조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홀로 한국의 길을 갈 힘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자문한다. 우리는 과연 경계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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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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