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지난해 12월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동해상에서 광개토대왕함을 겨냥한 위협 비행이 시작이었다. 일본은 위협비행을 하고도 적반하장 격으로 우리에게 사격 예비동작으로 레이더를 쏘았다고 했다. 한 달 뒤 일본은 다시 보란 듯이 이어도 인근에서 대조영함 위를 초근접 위협 비행했다. 영상을 공개한 끝에 초계기에 조사된 레이더 주파수를 내놓으라고 하자 일본 측은 도리어 한국 측에 주파수를 내놓으라는 상식 밖 주장을 폈다. 억지 주장에 물타기로 국제사회를 향해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홍보했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우리 군이 먼저 실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지난 8개월간 상황을 되짚으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일본의 의도를 너무나 늦게 간파했다는 것이다. 우선 아베 신조 총리가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 사안을 주도했다는 일본의 최초 보도는 위장이었다. 당시 공세를 주도한 것은 분명 방위청이었다. 경제 분야의 한·일 갈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산 해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 패소에 대한 맞대응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한국에 대한 대응 조치들이 지난달 참의원 선거를 위한 아베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도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일본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갈 방향을 정해놓고 있었고, 초계기 공세는 그 시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이 얼마나 치밀하게 한국에 대한 공세를 준비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강상중 교수의 분석대로 아베 총리 개인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일본의 즉흥적이지 않은 공세를 우리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런 방향은 되돌리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계기 사건과 이후 드러난 미국의 태도도 주목해야 한다. 해군 전술장교 출신으로 미군 전력의 핵심인 태평양사령관을 지낸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는 한·일 레이더 사건의 진상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연초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미국은 이상하리만치 무섭게 침묵을 지켰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서지 못하게 견제할 유혹을 느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 현실화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국의 안보는 이미 전인미답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달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영공을 침범한 것은 한 예일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일본도 계속 도발을 강화할 것이다. 북한의 압박에도 수시로 대응해야 한다. 안보집단의 의지와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군은 그동안 역량을 보여준 적이 없다. 미국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 다른 전략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접근할 당시 해군은 위협비행 장면을 영상에 담지 못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아래서 일본을 늘 우방국이라고만 믿어온 결과다. 국방부는 미국이 우리 논리에 동의했다고 하지만 미국은 끝내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러시아 공중조기경보기의 영공 침범 때 공포탄까지 쏜 공군의 대응은 훌륭했다. 그러나 곧바로 러시아의 실무협의에 응하고 영공침범에 대한 자료를 넘긴 것은 실책이었다. 러시아 전투기들은 그 후 며칠간 연속으로 한국을 무시한 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침범했다. 

광복 후 지난 70년 동안 군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에 안주해왔다. 군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전략적 사고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진지한 접근까지 무디게 했다.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운을 띄우자마자 예비역 장성들이 찬성하는 성명서를 냈다. 미국만 바라보고 온 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중국으로부터 사드 배치 때보다 몇 배의 보복을 받을 게 뻔한데 다른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광복 후 우리 안보집단의 한계이다. 무기 도입도 필요하지만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더 시급하다. 오늘날 국가들이 글로벌 전략에서는 이해를 함께할 수 있어도 지역 전략에서는 상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중·러 대 미·일의 대결구도가 뚜렷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정은 복잡하다. 중·러 간 경쟁은 물론 미·일의 이해 상충도 눈에 보인다. 최근 아베 총리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접근이 이를 시사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유일한 생존방식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대북 적대시와 미국 의존적 안보관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으면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이다. 냉정한 대응이 기존 체제를 답습하자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과 정치권이 함께 고민하며 이 길을 닦아 나가야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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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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