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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이런 선거는 없었다.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새로 뽑는 4·7 보궐선거는 최악의 선거였다. 재·보궐 선거는 원래 경쟁이 치열하다. 선거는 특정 지역에서 벌어지지만 관심은 전국에서 쏠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과 부산 시장을 뽑는 선거이다보니 다른 재·보궐 선거와 규모부터 달랐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고 축제여야 한다는 전제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선거의 원인이 된 전직 시장의 성추행에서부터 당헌을 바꿔가며 뒤집은 여당의 무공천 원칙, 게다가 10년 전 후보들이 그대로 나온 진부함까지 긍정적인 구석을 찾기 어려웠다.

정책 선거는 고사하고 코로나19 속에 신음하는 시민을 다독이는 제대로 된 의제도 없었다. 여야 정치권의 초급행 합작에 부산·경남 주민들은 가덕도신공항이라는, 향후 수년간 먹거리를 챙겼다. 이제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서울에서는 잠시 박영선 후보의 ‘21분 도시’가 관심을 끌었지만 이내 오세훈 후보의 부동산 의혹에 묻혔다. 오 후보는 취임 후 1주일 이내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공약했다. 오로지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선거였다. 선거전은 또 얼마나 혼탁했나.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라며 두 거대정당이 승부에 사활을 건 사이, 선거판에 시민은 없었다.

선거 전날까지 거대 양당 모두 자신들이 이긴다며 투표를 독려했다. 여당은 끝까지 야당 후보들의 도덕성을 물고늘어지면서 그동안 유권자들에게 소홀히했다고 읍소하고 있다. 처음에는 여당 심판론이 압도적이었지만 이후 야당 후보들의 도덕성 논란이 커지면서 박빙의 승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180의석의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야당은 심판론이라는 이름으로 여당에 대한 분노를 부추기기 바쁘다. 수권 능력을 담은 대안 제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페미니스트·진보 후보들이 여럿 나섰지만, 유권자들에게는 힘을 실을 마땅한 대안세력으로 비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일찍이 이번 선거처럼 투표할 동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경우도 없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투표를 포기했다”는 지인도 있다.

때론 기권하는 것도 정치권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욕망으로 점철된 선거에서는 통하지 않을 저항이다. 뒤에서 불평하고 속으로 웅얼거리는 의견은 누구도 존중하지 않는다. 코로나19를 뚫고 투표장에 직접 나가서 투표용지, 즉 ‘종이 짱돌’을 던지는 것만이 유효한 의사표시이다. 설사 주권자로서 권리를 누리는 것이 선거일 하루뿐이라고 해도 좋다. 본디 내 맘같이 흔쾌한 후보나 정책은 드물었다. 여의치 않으면 ‘차선·차악 선택법’을 동원하면 된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그도 아니라면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마저 싫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2017년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벌어진 무효표 현상을 참고하는 것이다. 당시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도 싫고 극우파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도 싫다는 무효표가 11.49%에 이르렀다. 유권자들은 “어차피 페스트 아니면 콜레라다. 우린 둘 다 원치 않는다”며 이를 투표장에서 행동으로 옮겨 정치권에 매서운 민심을 알렸다.

연극 이론 중 ‘체호프의 총’이라는 게 있다. 극중에 총이 등장하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등장한 요소는 반드시 쓰여야 하며, 그것도 지속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판이 벌어졌다면 짱돌은 반드시 던져져야 한다. 이번 선거전으로 볼 때 향후 대선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정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정치권에 분명한 경고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이 시민을 두려워하고 그 의사를 존중한다. 젊은 세대가 특히 새겨야 할 대목이다.

오늘 밤,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패배의 멍에가 씌워질 것이다. 이긴 쪽은 내년 3월 대선을 위한 승기를 잡았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그럴지 장담할 수 없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확인된 민심이 있다. 촛불집회를 통해 고양된 민주시민은 예외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든 오만하고 독선의 길을 간다면 힘을 뺀다는 것이다. 오늘 투표는 마무리되지만 그것은 다음 여정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다. 이번 선거엔 승자가 없다. 야당 덕을 보는 여당은 더 이상 없다. 야당도 반사이익만으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여야 모두에 이 점을 강력히 경고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투표장에 나가기로 했다.

이중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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