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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7년이나 젊어 있었다. 사진 속에서 웃고 걷고 있었다. 지난 주말 양산 하늘공원에 갔다. 올해는 여름이 일찍 시작된 터라 7년 전보다 아카시아 꽃들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모내기가 한창이었고 트랙터를 곳곳에서 마주했다. 노동운동가 변우백 7주기 자리. 두산중공업 사내 하청에서 비정규직 활동과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노력한 20대부터 알고 지냈던 벗이자 동지였던 사람이다. 지게차 운행 시 신호수는 법적 의무였지만 없었다. 신호수가 서야 할 그 자리에서 후진하는 지게차에 친구는 온몸이 깔려 30m나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는 2008년 5월16일. 그 이후 7년이 지났다. 원청인 두산중공업에선 사고 당일 사내 체육대회가 한창이었고 주검은 그저 하얀 천으로만 덮였다. ‘사람이 미래’라던 두산중공업엔 사고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까. 지게차 신호수가 지금은 있을까. 하청과 원청은 아직도 상명하복 관계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석 달이 지나고서야 죽음을 알게 됐다. 쌍용차 27번째 희생자. 지난 1월14일 백목현이 죽었다. 그러나 휴대폰은 살아 있었다. 백씨의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선 정기적으로 치과치료 등의 안내를 위해 해고자나 희망퇴직자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석 달 동안 죽은 아들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문자를 무심하게 보던 아버지는 지난 4월18일 와락으로 전화를 걸어 그곳이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와락에서 간단히 설명을 하자 “아들은 이미 죽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간이 조금 지난 4월30일 이번에 28번째 희생자 김종성. 아버지 휴대폰에 입력된 모든 이들에게 부고를 알린 사람은 스무 살 딸이었다. 둘 모두 희망퇴직자였고 2009년 쌍용차 파업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쌍용차의 산 자와 죽은 자들이 7년 동안 어딘가를 쉼없이 두드리고 있다. 그것이 어디고 무엇인지 요즘은 헛갈린다. 공명되지 않는 소리가 맥놀이 현상처럼 웅웅대는 것만 같다.

변죽 울리는 건 그들인가 나인가. 나는 그들의 절박함을 변죽으로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변죽이 아니라면 왜 이토록 죽음이 이어지고 끊이지 않는가. 아니 죽음 이후 어떤 변화가 있으며 바꾸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가. 세월호 참사 1년이 훌쩍 넘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는 탄식 속에서도 변화는 있다. 고향 친구 한 명은 초대형 LNG선 기관장이다. 외국을 드나드는 일이 잦은 그는 선박에 대한 검수 절차와 규정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시간이 몇 배로 들고 배 안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꽤나 길어졌단다. 그러나 그것이 귀찮지 않고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 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분들이 자기 목숨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준다며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찾아 성금을 내고 간다.

물대포를 맞고 광화문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서명을 받는 분들은 지치거나 남 탓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야냥 섞인 말을 들어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진실을 알리고 있다. 희망은 네 잎 클로버가 아니라 세 잎 클로버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듯하다.

‘노동운동가 변우백 추모 모임’에선 매년 투쟁하는 사업장에 투쟁 기금을 전달한다. 1주기 때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지난해엔 손배 가압류를 막기 위한 노란봉투에 지원했다. 7주기인 올해는 부산 생탁 노동자들에게 기금을 전달했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나눠지고 있는 것이다. 쌍용차 28분의 희생은 7년간 막혔던 노사 교섭의 물꼬를 텄고 쌍용차 문제 해결의 방향을 만들어놨다.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라져가는 ‘고통의 감각’을 일깨우고 있다. 점차 사람들은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겠지만 일깨워진 그 감각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은 보존되어야 할 어떤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며 한국 사회의 무감각을 벗기고 깨는 구실을 세월호 희생자분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년6개월 동안 경향신문에 칼럼을 썼다. 지면을 허락해준 경향신문사에 깊은 감사들 드린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듣는 시간을 더 가져보고 싶다. 무엇을 두드리고 들을 것인지 무엇에 반응할 것인지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완전한 역지사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애써볼 생각이다. 오늘과 내일이 구분되는 하루를 살고 싶고 기쁜 그 오늘의 1초를 당기고 싶고 이별해야 할 그 1초도 빨리 당기고 싶다. 시간의 배분과 만나는 사람과 삶의 공간을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며 그것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지치지 않고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쌍용차 문제 반듯하게 승리할 것이다.


이창근 |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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