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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박완서 작가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이해인 수녀. 이상훈 선임기자

모르는 척 모르는 척
겉으론 무심해 보일 테지요

비에 젖은 꽃잎처럼
울고 있는 내 마음은
늘 숨기고 싶어요

누구와도 헤어질 일이
참 많은 세상에서
나는 살아갈수록
헤어짐이 두렵습니다

낯선 이와
잠시 만나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눈물이 준비되어 있네요

이별의 눈물은 기도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라는
순결한 약속입니다

- 시집 <작은 위로에서> 중에서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되었어도 수많은 독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며 그리움의 별로 떠오르는 박완서 선생님,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선생님의 문학작품을 재조명하는 기사와 출간 소식이 들려옵니다. 코로나19로 다들 힘겹게 살아가는 요즘 선생님이 계셨으면 몇 번이고 통쾌하게 공감 가는 글들도 써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몹시 춥고 눈이 많이 온 2011년 1월22일 선생님의 장례식날. 여간해선 잘 울지 않는 제가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옆에서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 엄마의 미소처럼 포근한 눈꽃 속에/ 눈사람 되어 떠나신 우리 선생님/ 고향을 그리워한 선생님을/ 그토록 좋아하시는 부드러운 흙 속에/ 한 송이 꽃으로 묻고 와서/ 우리도 꽃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을 더 깊이 사랑하는 꽃/ 선생님의 인품을 더 곱게 닮고 싶은/ 그리움의 꽃이 되었습니다…”라는 추모시를 적기도 했지요.

요즘은 글방 창고에 모아둔 여러 편지들을 정리 중인데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제게 보내주신 카드도 발견되어 다시 읽어봅니다. “… 수녀님의 60회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지금까지 사신 만큼 앞으로 더 사시고, 지금까지 그러하였듯이 앞으로도 주님 보시기에 탐탁하고, 저희들 보기에 아름답고 미더운 나날이 되게 하시길, 마지막 날까지 건강의 복과 사랑받는 기쁨을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 저번에 보내주신 예쁜 것들 중에서 ‘오늘을 위한 기도’ ‘말을 위한 기도’는 수녀님이 저를 위해 만드신 게 아닌가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스며 머리맡에 두고 조석으로 읽으며 명심하고 있습니다”라고 쓰셨지요. 세상과 인간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애정, 자만에 빠지지 않고 ‘자기수련’으로 깨어 사는 겸손한 영성, 작가로서의 예리한 통찰력, 지혜, 열정을 선생님께 배울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했던 우리집 정원에는 요즘도 많은 새들이 놀러 옵니다. 까치나 참새는 물론 요즘은 부쩍 깃털이 화려한 후투티 새들이 자주 옵니다. 선생님이 꽃자랑을 많이 하시던 아치울 정원에도 머지않아 봄이 오겠지요.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란 부제가 붙은 따님의 책을 받고 보니 선생님이 손수 차려주시던 정갈하고 정겨운 밥상이 그립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삶과 수녀로서의 삶을 가까이 대할 적마다 작은 것, 숨겨진 것의 아름다움에 눈뜨는 기쁨과 함께 안배의 신비 같은 게 느껴져 숙연해진다’고 1994년에 펴낸 저의 두 번째 산문집 <꽃삽> 서문에 써주셨던 선생님, 저도 이젠 친지들의 부고를 자주 받으며 이별의 눈물이 더 많아지는 구체적인 노년을 살고 있지만 짐짓 명랑하게 살아가려 애를 씁니다.

“세월과 더불어 빛을 잃어도/ 힘들다고 슬프다고/ 한탄하지 않으면/ 은은한 환희심이 반달로 차오를 거라고/ 쓸쓸해도 자꾸만 웃음이 나올 거라고/ 창밖의 새들이 노래로 말을 하네/ 정원의 꽃들이 향기로 손짓하네.” 이렇게 시를 읊어보기도 하는 오늘, 이별은 기도의 출발임을 다시 묵상하면서 가장 순하고 어여쁜 눈물 한 방울을 기도의 진주로 만들겠습니다. 추억이 많을수록 눈물도 많이 모이지만 이 눈물을 더 깊고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시키라는 선생님의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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