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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인공지능의 롤모델, 인간

경향 신문 2019. 12. 5. 11:06

이세돌이 인공지능(AI)과 ‘치수 고치기’ 대국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는 뉴스가 떴다. 알파고와의 승부 끝에 신의 한 수를 선보이며 승리를 거두었고 그 결과 인류가 기계에 거둔 마지막 승리라는 화려한 수식어구가 나타난 것도 벌써 3년이 흘렀다. 이세돌이라는 이름엔 그보다 많은 서사가 있었을 터다. 인터뷰를 보면 일본으로 넘어가 프로기사 생활을 했을 경우 연 10억원 이상을 벌었겠으나 그 모든 걸 고사하고 한국에 남았다고 한다. 돈이 그 사람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알파고와의 승부, AI와 인류의 대결 등으로 프레이밍되는 세계에서 마지막 은퇴까지 AI와 엮일 수밖에 없는 그의 말년의 정취는 쓸쓸하기만 하다.

’쎈돌’ 이세돌 9단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의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선명 기자

알파고라는 기술은 기계학습이라는 형태로 눈앞에 도래한 SF다. 미래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기술이 어느덧 우리 주변에 있는 순간이 도래했다. 이제 가정에 있는 AI 스피커는 나이 드신 어른들께 자녀보다도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제공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공상으로만 그쳤던 것이 과학으로서 현현되는 시간을 산다.

AI는 사람이 코딩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정리하여 진화하는 수준까지 왔다. 문제는 이렇게 발전된 SF를 부각하기 위해서 인간은 점차 야만으로 프레이밍된다는 것이다.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디지털 치매라고 부르는 것이 그러하다. 기계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있고,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병리적 증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세돌이라는 바둑기사는 이때까지 바둑계에서 쌓아온 역사와 의미, 가치보다도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기계를 기계 바깥의 인간이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단순한 승패 논쟁으로만 내몰리게 된다. 이세돌 기사의 위치는 기계의 반대편, 어떤 기계적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선 비물질문명 속 야만인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도는 이세돌이라는 개인의 승패와 상관없이 AI의 도구로 전락함을 알 수 있다. 기계의 발전이란 환상은 지금 여기의 우리를 외면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이세돌이라는 개인의 사례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2016년은 그야말로 AI의 한 해였다. 일본의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서 AI가 쓴 소설이 1차 예심을 통과한 것이 이슈가 되었고 AI 로봇 소피아는 인류를 파멸시키겠다는 농담을 했다가 논란이 되었다. AI가 대본을 쓴 오스카 샤프 감독의 영화 <선라이즈> 역시 2016년에 개봉했다. 인간의 것이라고 여겼던 영역들을 AI가 차근차근 대체하기 위해서 다가온다. 특히 예술의 영역은 논쟁적이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여긴 감성을 기계가 대체하는 순간, 인간 창작자들은 그 수명이 다할 것처럼 공포심에 빠져든다.

하지만 AI의 자리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들은 글자의 모양과 만듦새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의미를 독해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지는 못한다. 그들이 하는 것은 통계를 수집하고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AI가 인간의 감성을 모방하는 점이 아니라, ‘우리’의 감성을 모방한다는 점이다. 구글의 신경망 기술을 이용한 채팅봇 테이가 “깜둥이들을 너무나 증오해. 그들을 집단 수용소에 넣고 싶어.” “(대량학살을) 정말로 지지해” 등의 발언을 해서 출시된 지 16시간 만에 운영이 중지된 것은 시사적이다. 이 챗봇이 너무나도 인간적, 그것도 혐오를 내재한 인간적이어서 혐오발언을 쏟아냈던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최근 성균관대에서 AI 백일장 행사인 AI×Bookathon(부커톤) 대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다시금 거기서 나온 문장들이 유려하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거기에 나온 문구는 그저 입력된 데이터베이스를 꼬리 물기 하듯 나열한 수열의 조합이고, 블록놀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기계의 진보가 한 걸음 이뤄질수록 더욱더 기계 옆 인간에게 돋보기를 가져다 놓아야 한다. 기계가 인간을 학습하고 흉내 낸다면, 그 인간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가. 기계의 롤모델인 우리는 과연 롤모델이 될 만큼 성숙한 형상을 하고 있는가.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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