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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 지나고, 소설도 지났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한바탕 내리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만산홍엽의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떨어진다.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는 것이야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라고 하지만, 가는 세월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아마도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더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리라. 가으내 단풍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벌써 세밑이라니, 뭔가 헛헛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가을 낙엽을 보며 뭔가 스산하고 헛헛한 감정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소임을 다하고 이파리를 떨구는 나무는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조용히 존엄한 소멸의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자연은 인간의 영혼에 상징의 언어로 말을 건다”(존 뮤어)고. 1892년 시에라클럽을 창립한 위대한 산악인 존 뮤어는 자서전에서 자연의 언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혼맹(魂盲)’ 상태의 근대 도시인들이 문제라는 생각을 적은 바 있다.

계절의 전환기에 자연의 유구한 순환을 바라보며 문득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것과 저것을 서로 매개해준다는 ‘다리’ 이미지가 유독 부각되는 말이다. 나이 탓일까. 50대 중반인 나는 요즘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50+ 신중년이든 노년 세대든 후배 세대에게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자문자답을 해보곤 하는 것이다. 어쩌면 선배 시민은 그렇게 자문자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한 ‘초고령화 시대 어르신 문화활동 진흥방안 마련 연구’ 자문회의에서도 이와 같은 내 생각을 피력했다. 초고령 사회란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 현재 15.7%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제 초고령화 시대가 머지않은 미래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720만명에 달하는 1차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년 세대에 편입되면서 기존 노년 세대와는 다른 ‘신노년’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존 세대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고자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 문화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세대 간 교류와 대화 또한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여러 논자들은 50+ 신중년 및 노년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선배 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려면 기득권 의식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움켜쥔 손을 펼 줄 아는 ‘위대한 포기’의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판’의 시간에 위대한 포기의 기술을 발휘하며 존엄한 소멸의 시간을 사는 가을나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늦가을, 원로시인 정양의 시 ‘막판이 저렇듯 타오른다면’을 나직이 읊조린다. “막판이 저렇듯 타오른다면/ 사람살이 얼마나 아름다우랴.” 나는 위 표현에서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려는 선배 시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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