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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인생+]지방 소멸의 뒤안길

경향 신문 2022. 6. 23. 10:21

여행을 하다 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방 소멸의 잔상이다. 수치화될 수 없는 지방 소멸의 징후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소멸의 뒤안길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지방 소멸 시대에 짧게 반짝 빛나는, 혹은 가슴 시리게 빛나는 ‘소멸산업’이 있다.

지방에서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잔치를 둘러싼 산업이 활발하다. 한때 예식장이었던 곳이 장례식장으로 바뀌고 있다. 도시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 지방에는 요양원이 들어선다. 그 지역의 가장 큰 건물이 요양원으로 바뀌거나 새로 지어지는 가장 큰 건물의 정체는 대체로 요양원이다. 소멸하고 있는 지방에서 우리의 삶도 소멸한다.

누릴 문화가 없는데도 복합문화센터는 속속 들어서고 운동기구는 마을을 벗어나 마을 밖까지 설치된다. 지자체에서 마을 밖에 설치해준 운동기구가 장승처럼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왕왕 본다. 예산 낭비는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을 정자에는 창문이 달리고 바람을 막은 탓에 선풍기가 설치된다. 게이트볼장엔 지붕이 설치되고 하늘을 막은 탓에 조명이 설치된다.

지방은 도시에서 밀려난 브랜드의 마지막 유배지이기도 하다. 지방도시의 ‘나름’ 중심가에는 CF를 안 내보낸 지 10년 이상 되는 의류 브랜드 매장을 두루 볼 수 있다.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 어르신들의 ‘고급’ 욕구를 채워준다. 발길이 뜸해진 장터에는 청년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떴다방’이 들어섰다가 지원금이 끊기면 스산하게 파장한다.

읍내를 벗어나면 전원생활과 숙박업을 겸해보겠다는 미망으로 시작한 펜션이 리모델링을 하지 못해 풀죽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그 옆에 드라이브인 방식의 무인호텔이 못 본 척해주겠다며 법령 밖의 사랑을 유혹한다. 지방을 여행한다는 것은 이런 풍경 사이를 가로지르며 방치된 경관을 사냥하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 새살도 돋아난다. 편의점은 없는 곳이라도 아시아마트나 월드마트는 있다(간혹 러시아마트도 있다). 유치원 규모의 시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단체 숙소가 되고 통학버스가 아니라 이들을 실어 나르는 통근버스가 논과 밭을 가로지른다. 시골 어르신들은 자신이 가 본 나라보다 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마을에 앉아서 만날 수 있다.

지방을 여행하면 그 지역의 특산물도 먹을 수 있지만 서울보다 더 쉽게, 더 싸게, 더 맛있게 동남아 휴양지에서 먹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스스로 연 음식점을 쉽게 마주치게 된다. 러시아 캄차카반도 여행에서 즐겼던 소시지와 정어리 통조림, 그리고 각양각색의 보드카도 러시아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서울에서도 맛볼 수 없는 키르기스스탄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있다.

모든 소멸해가는 것들은 아름답다. 우리의 지방도 그렇다. 그 소멸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여행은 또 하나의 인문 여행이다. 마지막 잔치를 벌이는 ‘소멸산업’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수도 있고 그 소멸의 잔상 속에서 돋아나는 새싹에 젓가락을 올릴 수도 있다. 이것 또한 삶의 풍경이다. 어느 지역 막걸리가 달아졌으면 이 동네 동남아 며느리들이 마시기 시작했나보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마시면 된다.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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