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람의 자리’가 몹시 위태롭다.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나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생물학적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사람과의 연결을 피하고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생각을 더 확산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이런 시대에 생활의 리듬을 바꾸고자 고민하고, 기후 위기 시대 생명을 생각하며 존엄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차라리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소위 먹고사니즘이 압도하는 사회는 절대 좋은 사회가 아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위기는 특히 저소득 시민들의 삶을 덮쳤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비 지출 비중이 커졌다는 11월21일 통계청 발표는 이번 겨울이 ‘불만의 계절’(존 스타인벡)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처럼 들린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의 경우 가처분소득의 절반이 ‘식비’였다고 한다. 말 그대로 지금 당장 근근이 한 끼니를 위해 소득의 절반을 먹고사는 데 지출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가난은 기후 위기 시대 중요한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 시인 천상병이 어느 시에서 “가난은 나의 직업”(<나의 가난은>)이라고 당당히 선언한 것은 자발적 가난의 정신과 태도를 잘 보여준다. 문제는 강요된 가난이다. 강요된 가난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하며 자칫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노인, 가난한 자, 고립된 자들을 위한 예방적 사회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며 온전한 사회통합을 방해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1995년 7월 일주일 동안 지속된 시카고 폭염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700여명이 사망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평소 길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에 속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지역 사회에서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가벼운 교류’가 있었느냐가 결정적인 차이를 보였다고 보고한다. 다시 말해 서로의 ‘안녕’을 묻는 가벼운 교류는 실제 가볍지 않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며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람의 자리를 생각하는 예방적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나와 우리가 사는 지역 곳곳에 ‘관계의 평상’을 놓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난해 어느 포럼에서 광주 양산동 옛 양산시장 골목 어귀에 주차 공간 대신 ‘평상’을 놓았더니 주민들과의 관계가 확 살아나며 인기척이 있는 마을로 거듭났다고 한 ‘마음놀이터’ 김옥진 대표의 말이 잊히지 않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개입은 ‘문화안전망’을 더 튼튼히 하며 우리의 관계를 단단히 할 것이라고 믿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응하는 행정의 ‘악의적 무시’가 계속되는 처사는 사람의 자리를 존중하려는 행정의 태도가 아니다. “눈떠라 눈떠라 참담한 시대가 온다”(황동규 <전봉준>)라는 어느 시인의 구절을 요즘 자주 입에 되뇐다. 사람의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가, 자주 묻게 되는 시절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연재 | 인생+ - 경향신문

73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기사를 구독하여 새로운 기사를 메일로 먼저 받아보세요.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색 초기화

www.khan.co.kr

 

댓글
댓글쓰기 폼
«   2022/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6,494,113
Today
0
Yesterday
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