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만든 적 있다. 이름은 ‘수저게임’. 말 그대로 참가자가 카드를 뽑아 금수저 또는 흙수저의 신분을 부여받은 뒤 역할에 충실히 활약하는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태어날 때 정해진 조건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졌다. 양극화를 좁히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북돋고 싶었다. 이를 위해 금수저는 더욱 부자 되는 것을 승리의 조건으로, 흙수저는 같은 계급 사람들 모두 무사히 생존하거나 혼자 계급 상승 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 자원이 한정돼 있으니 갈등이 빚어지기 마련. 게임의 핵심은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었다. 나는 플레이어들이 토론과 투표로 체계를 바꾸는 경험을 체득하도록 의도했다. 게임이 창작자의 의도와 정서를 전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게임을 만든 적 있지만, 평소 게임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명작으로 꼽히는 타이틀 몇 편의 결말을 본 정도? 주로 롤플레잉 비디오 게임이었다. 게임 덕에 용과 마법사가 활약하는 판타지 세계도,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 미래도 활보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모험을 벌인 뒤 당도한 결말을 곱씹으며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제작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닿았다고 느꼈을 때, 기꺼웠다. 감동과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물론 과정도 즐거워야 게임이다. 사실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종종 헤매었다. 말 그대로 길을 잃었다. 현실에서 길치는 게임에서도 길치였다…. 게임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기술을 숙련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퍼즐을 푸는 식의 도전 과제들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게임을 보다 즐겁게 하기 위해 난도를 낮추면서, 현실을 떠올렸다. 인생의 난이도도 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지 모드’로 산다면 부족한 능력을 이유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쫓기는 기분으로부터 숨 고를 수 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웃으며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에 사는 대부분에게 현실은 ‘하드 모드’다.

게임이 인생과 다른 점은 스스로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다. 게임에서의 성장은 (현실에 비해)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지고, 도전 과제에는 반드시 해법이 있기 마련이며, 실수를 돌이킬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즉 게임에서의 노력은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으로 보답받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이들 중 일상생활에서 성취감을 얻지 못하고, 위안을 주는 관계망에 속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에 게임 관련 질병을 등록했다. 게임에 장기적으로 과몰입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에 대해서다. 이에 ‘게임은 유해하므로 청소년은 아예 게임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주장에 반대한다. 앞서 말했듯, 생각할 거리와 정서적 여운을 남기는 게임도 존재한다. 품위 없는 성 상품화와 ‘현질’ 유도, 사행성 확률 아이템만이 게임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물론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게 모든 게임들을 싸잡아 혐오하고 금지하며 억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부모부터 자식이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돼줘야 ‘게임 과몰입’을 완화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자식의 관심사와 욕망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태도가 요구된다. 혹시 또 모르지. 자식이 게임에 흥미를 가지다 직접 게임을 만들어내고, 그로써 ‘성공’을 이루게 될지도.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람의 수와 그 정도를 줄이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인생을 ‘즐겜’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보편의 사람들의 삶이 ‘이지 모드’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노말 모드’ 정도는 되도록.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일이 조금은 쉬워 지도록. 역시나 안전망을 확충하고 양극화를 좁히는 사회적 개입이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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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