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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일기를 쓰는 네 가지 이유

경향 신문 2021. 4. 15. 09:36

사람마다 일기를 쓰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바쁘거나 귀찮거나 우울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일기 쓰기가 느슨해질 때라면 쓰는 행위의 가벼움과 위로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합법적으로 읽어도 되는 남의 일기 몇 권을 소개하고 싶다.

1) “쉰 살의 버지니아 울프를 위해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일을 생각하면 그녀가 부러워진다. 이보다 내가 더 좋아할 일은 없다.” <울프 일기>(박희진 옮김, 솔, 2020)는 울프의 36세부터 51세까지의 치열한 사유가 담긴 압도적인 기록이다. 1918년, 30대였던 그녀는 소설을 집필하는 데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일기를 쓰는 까닭이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라고 적는다. 별생각 없이 부려놓았던 글자들과 당시에는 눈에 띄지도 않을 사소한 의미가 언젠가는 쓰레기 속의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그 찰나에 떠다니는 언어를 붙잡기 위한 속도는? “가장 빠른 타자기보다 더 빨리.”

2) “한심한 것만 써놓고 감상에 젖어 있는 저입니다.” 하야시 후미코의 <방랑기>(이애숙 옮김, 창비, 2015)는 작가가 실제로 18세부터 23세까지 적어내려간 여섯 권 분량의 일기 노트를 다듬은 소설로, 1930년대 당시 60만부가 팔리며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고향 없이 떠돌아다니는 궁핍한 방랑 중에 남자에게 의존했다가 배신당하기를 반복하고 극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리지만,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만은 꿈속 세상이다. 비참한 생활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그녀가 감상에 젖어 바라보는 세계는 생생하고 아름답다. 대단하지 않더라도 “뭔가를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 아주 특별한 일이니까.

3) “기록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8)는 1977년 10월25일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부터 이태 동안,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관찰하듯 기록한 일기다. 그는 쓰는 행위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길을 겨우 더듬어간다. 시간은 슬픔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하고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일까.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예민함이 옅어지는 시간이 남긴 아름다운 흔적이다.

4)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있다.”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사, 2018)는 바르트의 일기를 번역한 철학자 김진영이 2017년 여름부터 임종 3일 전까지, 약 1년 동안 병상에서 썼던 일기 모음이다. 몸은 망가져가지만 정신은 빛났다는 식의 역설을 믿지 않는 대신 죽어가는 두려움과 쓸쓸함을 꼼꼼히 적고 그것들마저 인생으로 껴안으려는 것.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는 깨달음도 그런 긍정 안에 있다.

그렇게 순간의 기록은 영원한 현재로 출몰하고, 미래를 위한 선물은 나의 마음과 머리와 손을 거쳐 타인에게 건네진다. 일기에 정해진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를 기억해주기도, 자유롭게도, 버티게도, 울리기도 한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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