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라는 지명을 처음 인식하게 된 건 미군기지와 관련해서였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의 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의 범죄도 그에 못지않았던 터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먼 나라였다. 지도를 보면 오키나와가 일본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일본 열도의 남쪽 끄트머리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오키나와는 일본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으니까. 오키나와에 정말 관심을 갖게 된 건 메도루마 슌의 소설을 읽고 난 뒤부터였다. 그제야 오키나와의 역사를 다룬 글을 찾아 읽으며 오키나와를 알아갔다. 

메도루마 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몇몇 단편만 두고 말하자면 낯익고도 낯설어 뭐라 표현하기 쉽지 않은 묘한 특색이 있다. 인물의 한쪽 다리가 퉁퉁 붓더니 엄지발가락에서 물이 나오게 되고 밤마다 귀신들이 나타나 그 물을 받아먹는다거나 넋이 나간 사람의 입속에 소라게가 들어가 있다는 식의 설정은 분명히 현실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환상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메도루마 슌의 소설에 도입된 이러한 환상성은 최근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환상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외려 러시아의 고골과 같은 옛 작가들이 환상성을 다루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할 만큼 순진하고 단순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환상적이라고 여겼던 부분들이 어떤 실제보다 실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게 되고 비로소 환상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에 가까워야 한다, 라고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이의 소설에서 소설가의 곤혹을 느꼈다. 비참한 역사를 마주한 소설가가 선택할 수밖에 없고 선택해야만 했던 환상성이 환상으로의 도피로 여겨지지 않도록 고뇌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인물을 내세워 그 인물의 내면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고통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 보여줄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이의 용기 덕분에 일본 내부의 식민지라는 오키나와의 정체성이 다른 어떤 문학에서보다 더 사실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일왕의 생일 축하연에서 일본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던 아무로 나미에의 용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소설가의 용기였다. 그들의 용기가 귀중한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행보와 관련해서 일본 상품을 불매하는 운동이 한창이다. 이 운동은 자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의 헌법 9조를 개정하여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바꾸려 하는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적 움직임을 거부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운동은 혐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일본의 양심들이 오래전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막으려 했던 일들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 헌법이 개정되었을 때 악몽이 다시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고 느끼게 될 이들은 아마도 오키나와 사람들일 테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 가운데 하나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상상할 줄 아는 용기일 것이다. 우리가 이명박·박근혜 시절을 살면서 느껴야 했던 비참함을 지금 그들도 느끼고 있다. 아베를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그들은 지금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그이들을 환대해야 하고 그이들을 격려해야 하며 그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일본은 가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오키나와라면 괜찮지 않을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곳.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삶과 현실 그 자체로 전쟁을 느낄 수밖에 없는, 평화헌법이 개정되는 순간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그이들이라면 손을 내미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그곳은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니까.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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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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