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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 ‘빨갱이’는 매우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었다. 지배세력은 물론이고 ‘국민’ 사이에서도 일상적 상호 감시 도구였다. 당대도 이러한 현상은 양상을 달리할 뿐 계속되고 있다. 친일파와 빨갱이는 상투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를 규율하는 중요한 문화논리다. “좌파”라는 비난에 “연기파”라고 응수한 배우 박중훈처럼, 사회가 규정한 폭력을 넘어서는 제3의 사고방식이 널리 공유되기를 바랄 뿐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과 북한에 대한 집착은 상대적으로 옅어진 듯하다. 온갖 ‘K~’ 수식어가 등장, 서구보다 ‘앞서는’ 분야가 생겨나자 북한에 대한 적개심도 시들해졌고(?) ‘토착 왜구’가 ‘친일파’를 대신하고 있다.

전통적인 적이 사라지자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검찰과 언론이다. 검찰과 특정 진보 또는 보수매체가 진실의 잣대가 되었다. 검찰과 특정 언론에 대한 찬반 입장이 자기 입장이 되어, ‘말 한마디’에 수시로 여론 재판이 열린다.

진영 논리는 논리가 없다. 그냥 도그마다. 내부의 갈등과 부패를 봉합하고, 외부에 상상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적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 삶의 방식이다. 적이 없으면, ‘우리’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 외부의 인질이 되어,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너처럼 친일파, 빨갱이는 아니다”라는 얘기다. 이 규정은 먼저 하는 사람, 우기는 사람이 ‘이기는’ 불공정 게임이다.

모든 언어는 당파적이고, 팩트는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말뜻 그대로, 당파성(partiality)은 부분성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은 소멸한다”는 자연의 법칙 외에는 그 어떤 언설도 부분적 사실이며, 맥락과 함께 사라질 정보일 뿐이다. 모든 앎이 부분적 인식이라는 명제는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상대주의가 아니다. 객관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한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당위가 아니다.

코로나19와 더위 말고도, 요즘 시국에 우울하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나를 포함, 미디어의 폭발과 그들이 쏟아내는 뉴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진영 논리에 갇혀 자기 검열, 커뮤니티의 검열, 사회적 검열 때문에 하고 싶은 말 혹은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니, 답답하다. 나의 정치적 지향을 떠나, 검찰과 보수 언론의 말도 팩트인 경우가 있고 소위 진보 진영의 입장도 오보나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이 많다.

한편 검찰과 언론 권력이 견제를 받게 되자(?) 이들은 더욱 바빠졌다. 이제 검찰도 기사를 쓰고 언론은 수사를 한다. 나는 이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의 부분적 진실에 대응해 그들도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흘리기’)와 취재 차원의 수사를 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범진보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집단도 개인도 모두 자기 합리화가 가장 중요한 시대다.

일본, 북한, 검찰, 언론…. 일상과 가치관이 특정 대상에 대한 안티에서 출발하는 사회는 가능성이 없다. 사람들은 외부의 적을 혐오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적을 절대적인 지배자로 모시고 있다. 유신 독재나 5공화국 시절, 반북·반공을 빌미로 통치 권력이 날뛸 때 국민은 숨죽였다. 지금은 보수·진보 세력의 동향에 따라 사람들은 서울시 소재 서초동·광화문에 모이기를 반복한다. 서로가 상대방이 ‘적폐’라며 규탄하지만, 적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꼴이다.

‘덕분에’ 내부의 불법과 패륜은 진영 뒤에 숨는다. 상대의 과오는 과장하고, 내 편의 잘못은 덮는다. ‘편 가르기’는 수시로 이뤄지는 합종연횡의 정치여야 하지, 검찰과 언론을 기준으로 정해져선 안 된다. 사안마다 진실은 다르다는 얘기다.

1994년의 르완다 집단 학살은 식민 지배자인 벨기에의 분리 통치의 유산이었다. 토착부족인 후투족과 소수민족인 투치족 간의 전쟁으로 100만명이 이상이 사망하고, 200만명이 난민이 되었다. 두 종족 사이에는 ‘생김새’의 구별이 없다. “저 사람이 후투/투치예요”라는 타인의 손가락 방향이 생사를 결정했다. 타인을 지명(指名)한 이들만 살아남았다. 한국전쟁 당시 마을 학살에서도 흔했던 일이다. 르완다 사태에서 작동했던 논리와 한국 사회, 크게 다른가?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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